ANTIQUUS

[#M_ Prologue | less.. | 존폐의 기로에 서있지만 한때나마 내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차지했던 그곳에서 배운 버릇이 있다면 그것은 편집선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다. 잡지나 신문을 볼 때마다 내용보다는 편집선의 위치와 장평, 행간과, 공간의 쓰임새를 눈 여겨 보던 버릇이 지금까지도 없어지지 않은 셈이다. 잘된 지면 분할을 훔치기 위해 나도 모르게 자를 들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선을 그어보는 나를 발견하는 일은 여전히 놀라움 자체다.

쓰임을 찾을 수 없는 일에 매달리는 것이 애처로움을 자처하는 행동이란 사실쯤은 알고 있다. 다만 시간이 몸 속에 아로새긴 습관을 지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란 사실에 한탄할 따름이다. 그곳을 떠난 뒤로는 한참이나 잡지나 신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습관을 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직 시간뿐이라는 조언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습관이 그렇게 빨리 사라진다면 세상살이를 어려워하는 실패자는 반으로 줄어들 것이고, 성공은 더 이상 짜릿하지 않게 될 것이다. 결국 그렇게 난 또 다시 제 버릇을 못 버린 짐승이 되었다._M#]


사실 제 버릇을 못 버린 짐승이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해 준 것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문 교양을 화두로 삼은 격월간 잡지인 <안띠꾸스>때문이었다. 창간호에서 달이 지날수록 점차 편집이 안정화 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곳에서의 옛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청탁을 넣은 글이 지니는 애매한 까다로움을 교묘하게 피해가거나, 종이와 쿼크사이에서 나오는 괴리감을 점차 줄여 나가는 순간을 발견하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능숙해지는 지면 배치와 축적되는 원칙을 발견하면서 좋았던 이십대 초반을 떠올랐다. 다른 사람이 만든 잡지를 보면서 좋았던 옛 시절을 추억하는 것은 어딘지 모양새가 나지 않는 일이지만 새롭게 시작한 잡지를 보며 내가 느낀 것은 분명 대리 만족이었다.

하지만 <안띠꾸스>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십대 초반의 추억을 되살리는 향수만은 아니었다. 미친 듯 달리다가 지면 제약이라는 한계에 봉착해 설익은 풋사과 같은 느낌을 풍기며 마무리 지어지는 글들을 읽으며 어긋한 핀트를 찾아 맞추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칼럼을 따라가다 보면 고전 읽기에 처음 몰입하던 순간의 유쾌한 흥분과 설레임이 마치 어제처럼 되살아 나곤 했다.

가장 재미없는 잡지는 매너리즘에 빠져 관성으로 굴러가는 잡지이다. 더 이상 개선될 전망도 나아질 것도 없는 잡지의 운명은 매력을 상실한 채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어설픈 허점으로 채워진 창간기의 잡지는 그렇지 않다. 잡지와 함께 성장하는 자신을, 늘어나는 기교와 굳건해지는 윈칙을 발견하며 독자 역시 잡지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기쁜 마음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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