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어떤 이들은 우리 시대를 일컬어 ‘소설이 죽음을 맞이한 시대’라고 안타까워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이상 소설이 낳을 수 있는 감동은 사라져 버렸다고 성급하게 말을 뱉는다. 하지만 이들의 노파심과 비아냥이 근거 없는 낭설인 것만은 아니다. 빠르고 화려한 영상 예술에 소설이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현듯 나타나 삶에 충격을 던져주고 가는 것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적어도 내 삶에서는- 아직 소설의 위상을 넘볼 것은 없다. 소설은 아직 죽지 않았다. 문장에 담을 수 있는 상상력은 아직 밑천을 들어내지 않았고, 문장이 품을 수 있는 미묘한 맛은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이것이 소설이 죽었다는 말이 틀린 이유이다. 사실 소설의 죽음에 대한 반박으로 글 머리를 여는 것은 파이 이야기(Life of Pi)의 책날개에 실린 한 줄의 코멘트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예술이 죽어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얀 마텔의 소설을 읽어보라’

<식스 센스>나 <디 아더스>의 결말을 이야기하는 것이 감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파이 이야기>의 결말을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마지막 3부에서 들어 나는 진실은 사람을 전율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아니 전율 이전에 차라리 마지막 인터뷰를 읽지 않았던 잠시 전으로 돌아가고 싶기까지 하다. 기억 속에 담긴 문장은 제자리를 찾아 맞물려 돌아가며 거대한 파랑을 만든다. 파랑은 이내 폭풍우를 몰고 오면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길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언어의 마술사라는 작가에 대한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벽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흘러간 문장을 음미해 보면 허망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흉강을 가득 채운 채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머문다. 역치 바로 아래 상태에서 우리는 작가의 언어에 길들어 진다. 뱅골 호랑이와 표류하던 소년이 호루라기로 호랑이를 길들였던 것처럼 작가는 역치 바로 아래 상태까지 내몰았다가 잡아 당기기를 반복함으로써 합리성과 이성이라는 상상력의 적을 제압한다.

소설에 매혹당하지 않았다면 혹은 이야기에 취해 있지 않았다면 놓치지 않았을 사실들을 망각하면서 우리는 뱅골 호랑이와 인도 소년의 태평양 표류기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곤 이내 파이의 생존에 응원을 보낸다. 중요한 것은 행간에 숨겨진 복선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에 몰입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 이 상태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이 멋진 소설을 음미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1부가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1부의 다소 지루하고 늘어진 서술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2부의 속도감과 억제된 슬픔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1부가 그려내는 파이라는 캐릭터를 충분하게 음미하지 않으면 소설을 끝까지 읽어도 무엇이 진실인지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3부의 존재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이 더 크다. 시간이 제법 흐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진실에 이르렀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추측에 머물러 있는 진실과 확연하게 드러난 진실은 충격의 여파가 다르다. 가능성과 사실은 전혀 다른 영역과 관념을 추상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3부의 존재로 인하여 이 이야기는 더 이상 역경을 이겨낸 소년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파이 이야기>는 고전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동화 같은 외피에 쌓여 있지만 이 속에 담긴 이야기는 맑고 순수한 그래서 생각이 필요 없는 동화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책은 평생동안 ‘사랑한다. 리차드 파커’ 라는 파이의 외침을 잊지 못하게 만들 것 같다.

[#M_ more.. | less.. | 막내 누이는 나보다 보름이나 먼저 이 책을 읽었지만 묵언계를 훌륭하게 수행함으로써 내게서 책 읽는 즐거움을 뺐지 않았다. 하지만 둘째 누이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소설의 마지막 장을 먼저 펼쳤다가 소설의 즐거움을 잃어버렸다. 이율배반적인 행동이지만 절대 이 책을 읽기 전에 리뷰를 읽는 행동만큼은 삼가기를 바란다._M#]

14 thoughts on “파이 이야기”

  1. 내용보다는 요즘 책 답지 않게 종이가 얇고 질이 좋지 않아 가격이 저렴한게 마음에 들었어요 =_=; 그다지 두꺼워보이지 않았는데 실제로 잡으니 꽤 두툼하더라고요. 마지막 인터뷰는.. 글쎄요..

  2. 사실 저도 저렴한 가격과, 높은 할인률 적용 때문에 나중에 읽으리라 마음 먹었던 계획을 수정하게 되었어요. 마지막 인터뷰는 뭐랄까? 좀 복잡해요. 처음에는 없었다면 좋았을거란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는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더라구요.

    제 경우에는 충격적인 반전이 있다는 평을 이미 들은터라 2부 후반부에서 어느 정도 감을 잡기는 했는데 설마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반밖에 예상하지 못했어요). 1부와 2부의 서술이 머리속에서 다시 정리되면서 오는 느낌이 좀 복잡다난하더군요. 하지만 그럼에도 해피엔딩이라는 말에는 동감해요.

    그냥 혹 이럴지도 모르겠다는 의혹이 실체로 확인되는 순간의 공포와 수수께끼가 풀리는 쾌감이 섞였다라는 표현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3. 오히려 아무 정보 없이 잡았던 저는 일단 표류기가 나오자 괜히 읽었다는 생각을 했고 – 이런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 반전 부분에선 이런 스타일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시간에 너무 쫒기며 읽어서 아직은 인터뷰의 의미를 정확하게는 모르겠네요. 그래서 해피앤딩이라는 말에도 알쏭달쏭해요 ^-^ 조금이라도 반전에 대해 눈치를 챘다면 감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제가 워낙 작가의 레일만을 충실히 따라가는 타입이라 확신하지도 못하겠네요 ^^;
    덧. 생각해보면 굉장한 반전이지만 이렇게까지 무덤덤한건 역시 표류기를 싫어하는 개인성향 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4. 위에 글을 삭제할까 했다가 그냥 둡니다 ^-^ 저녁을 먹고오니 갑자기 파이이야기가 이해가 되었어요. 인터뷰를 통해 확 이어지는군요. 1부와 3부가 어우러 지면서 저도 어쨌든 해피앤딩이라는 말에 동감할수 있을것 같네요.

  5. <그럼에도> 혹은 <어쨌든>이란 단어가 중요한 것 같아요. 얼마 전 앤소니 애버릿의 <키케로>란 책을 읽었는데 꽤 재미났어요. mid-term이 끝난 기념으로 몇시간쯤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6. 앤소니애버릿의 키케로는.. 끝까지 읽는데만 의의를 뒀던 책이네요. 전 책장이 잘 안넘어가더라고요 ^^; 중반까지는 그럭저럭 읽었는데 그 이후는 정말 안넘어갔어요. 카틸리나부분은 꽤 흥미롭게 읽었지만요.

    9월이 끝날 무렵에야 깨달은건데, 제대로 공부하려면 신문 읽을시간도 없더라고요. 다른 책들은 박스에 쌓아서 집으로 보내버릴까 고민중이랍니다 ㅠㅠ

  7. 전 뒷부분이 더 재미났던 것 같아요. 그나저나 가을이 깊어질 수록 시험이 다가오는 것이 다들 몸으로 느껴지나 봐요. 슬슬 분위기가 달아오른다고 해야하나요? 힘내세요. 시간도 중요하지만 시간대비 효율성도 꽤나 중요하답니다.

  8. 읽었는데 엔딩이 어땠는지 잊어버렸어요. ‘재밌었다’ 라고만 기억나네요:)
    이거 영화로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듯해요

  9. 네. 영화로 만든다고 하더라구요. 구체적인 크랭크인 정보는 저 역시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영화로 만들기에는 꽤나 까다로울 것 같아요. 나래이션으로 처리하는 것이나. 화면 전환으로 처리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테니까요.

  10. 열 여섯살 소년 파이(피신 몰리토 파텔)의 아버지는 인도, 폰디체리에서 동물원을 운영한다. 파이의 가족은 인도의 정세가 어지럽게 돌아가자 1977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다. 일본회사 소유의 ?

  11. 이 책을 관심밖에 두고 외면했던 제가 너무 후회됩니다. 1부는 지루했지만 2부에서 펼쳐지는 표류기. 잊지 못 할 것 같아요. 파이가 제일 마지막에 묻는 질문에 저는 “동물 이야기가 더 맘에 드네요”라고 답해주고 싶습니다. 지나칠 뻔한 책을 소개해주셔서 정말 깊은 감사드려요^^

  12. 뭘요. ^^ 저도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한층 강력한 어조로 주변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있는 중이예요. 하나씩 ‘파이 이야기’의 신도가 되어가는 것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죠.

  13. 앗 이런… 저는 인터뷰를 반전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답니다. 저에게는 그저 믿음의 문제이자 작가의 장치로 느껴졌다는.

  14. 저는 2부의 끝에서 ‘사랑한다 리차드 파커’라는 파이의 외침까지 읽으면서 긴장이 완전히 풀어졌던 것 같아요. 주변의 뉘앙스에도 불구하고 마치 맨 뒤의 역자서문을 읽는 가벼운 마음으로 커피까지 새로 내려가면서 페이지를 넘겼거든요.

    그런데 부드럽게 넘어가던 책장이 ‘바나나’가 언급되면서부터 얼개가 맞아 떨어지더니 꽤나 끔찍한 그림이 그려지더라구요. 생존투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따라가기에도 벅찼던 탓인지 반전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 또한 믿음의 문제이기를 바라는 소설이예요. 그렇다면 살만 루시디의 ‘하룬과 이야기 바다’를 권하는 것처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손쉽게 권했을테니까요. 그 인터뷰의 존재로 말미암아 ‘눈 먼자들의 도시’처럼 낯선이게는 선뜻 권하기 힘든 책이 되어버린 것 같아 조금은 서운하기도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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