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셰익스피어난장

평생 기억에 남을 사건은 의외로 흔하지 않다. 아니 흔하다면 평생 기억에 남을 사건 자체가 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기와 관람한 연희단거리패의 <햄릿>이 그랬다. 오후 늦게 쏟아지기 시작한 비와 을씨년스러운 바람 그리고 야외극이라는 낱말이 만들어 낸 환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꽤 긴 공연이었지만 얇은 셔츠사이로 스산하게 스며드는 바람도, 대중없이 흘러나와 신경을 거스르던 웃음도 공연 자체의 몰입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지기의 경우는 좀 힘들어 보였다. 팀플의 피로와 허리 통증이라는 요소가 그를 조금은 힙들게 만들었다- 쓸데 없이 글로브 극장의 역사라든지, 그 시대 연극 배우들에 대한 짧은 팜플렛을 기억하거나 되새기는 일 없이 극 자체에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셰익스피어 난장에 올려진 <햄릿>에 대한 비평은 충분할 만큼 많이 나왔다. 굳이 여기에 작은 덧붙임을 하자면 24일 공연에서 보여진 근친상간적 요소가 처음에는 매우 당혹스러웠다는 점이다. 오필리아와 레어티즈, 햄릿과 거트루트의 근친 요소는 잠시 동안이긴 했지만 규범적 종속적인 우리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연출로 다가왔다. 공연이 끝난 후 이번에 도입된 근친적 요소가 다양한 모색을 위한 시도라는 설명이 없었더라면 경쾌한 마음으로 가을밤의 난장을 유쾌하게 마무리 짓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기실 내가 <햄릿>을 읽는 방법은 좀 삐딱하다. 어려서 본 Kenneth Branagh와 Kate Winslet 주연의 <햄릿>덕분인지 난 햄릿보다는 오필리어의 더 초점을 맞춘다.-아니 자세히 생각해보면 랭보의 탓도 있다. 난 그의 오필리어 연작을 좋아한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햄릿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 오필리어가 등장한 연희단 거리패의 <햄릿>은 내 기호에 딱 맞은 공연이었던 셈이다.

무대를 중심으로 좌측에 앉은 우리는 무대의 전면에 등장하기 이전의 오필리어가 보여주는 세세한 움직임까지 볼 수 있었기에 더욱 시선이 끌렸던 것 같다. 소탈하면서도 확신 있게 말하던 공연 이후의 모습을 보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내가 본 공연에서는 연출가의 부재로 연출자와의 대화가 출연진과의 대화로 대체되었다는 점이다. 비록 그것이 우리에게는 더 좋은 느낌을 선사했을지라도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7 thoughts on “햄릿-셰익스피어난장”

  1. 공연일시: 2005년 09월 21일 ~ 2005년 09월 29일
    공연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연출: 이윤택
    연습감독: 남미정
    무대미술: 김경수
    조명디자인: 조인곤
    연기훈련: 헤르게 무지알(Helge Musial)
    의상: 김미?

  2. 솔직히 극중 보다는 출연진과의 대화에서의 모습이 더욱 인상적이었지만.
    오필리어 원츄~ㅋ

  3. 어디냐?
    서울 왔었냐?
    이런….
    누나 서초에서 계속 담주까지 교육인데 ,,,,,

  4. //빨간그림자
    기다려 주셨다니 매우 기쁜걸요.^^

    //WC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읽었다네. 하지만 목표가 지녀야 할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어.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사람, 하고 싶은 일이 나타나 있지 않은것은 목표라기 보다는 그래 ‘상봉점’이 아닐까 싶어.

    하지만 자네 뜻은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바야. 그 선택이라면 나쁘지 않아. 다만 전공을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세부 항목을 조율하기를 바란다네. 상봉점가지고는 일관성 있는 실행계획을 세울 수 없는 법이니까.

    //Ms. M
    집인데. 이 공연은 지난달에 본 것이야. 이번 달에는 예정 없음이고 다음달에나 모임때문에 움직어야 할 듯 싶어.

  5. 오필리어-레어티즈 커플링은 이제 좀 식상할 정도더군요. (압권이었던 건 햄릿-레어티즈 커플링 -_-)

  6. ‘지금 뭐하는 짓이야’ 하고 깜짝 놀랐던 저는 순진했던 셈이군요. 햄릿-레어티즈의 couple化가 진행된다면 아마 지금의 정신적 성숙 상태로는 받아 들이기 힘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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