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여인의 죽음

내가 처음으로 읽은 조나단 스펜서의 글은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였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기억의 궁전이란 말에 이끌려서 임이 분명하다. 당시의 나는 반복이야말로 최선의 기억법이라는 사실을 모르던 철부지 소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취미 삼아 읽기 시작한 그의 글이 이제는 제법 많은 숫자가 된 것 같다.

사실 <왕 여인의 죽음>은 내 구미에 딱 맞은 책은 아니다. 17세기 중엽 강희제 치하의 중국의 일상을 그려낸 이 책은 하부 구조보다는 상부 구조에 초점을 맞추는 내 시선과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선이 다르다고 해서 역사에 대한 그의 이해까지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그려내고 있는 17세기 보통의 중국인들의 삶은 명 말의 우울한 기록이나 강건성세에 대한 수많은 찬양록보다 일상으로서의 진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의 한 단면에 현미경을 들이댐으로써 17세기 중국을 이해한다는 발상은 매력적인 동시에 위험한 발상의 전환이기도 하다. 부분은 전체의 일부이지만 부분을 결합시킨다고 전체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방식은 수동적인 17세기 중국인들을 그려냈을 뿐이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며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그저 존재했던 사람들에 대한 겉은 따뜻하되 속은 냉정한 학자의 유희일 뿐이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과거 어떤 시대의 슬라이드를 바라보는 것은 과연 어느 정도나 정답에 근접할까? 누구도 답은 알지 못한다. 그저 추정할 수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하부 구조의 한 슬라이드를 통해 이것이 전체의 문제점이라고 은근 슬쩍 말하는 행동은 상부 구조가 전체를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바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스펜서는 일반화 시키기 어려운 장소와 시기를 골랐다. 명 청 교체기의 화북지방이 전쟁의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입은 지역이란 사실이고, 그가 다룬 시대가 강희제의 제위 초기(친정이전의)와 삼번의 난 사이의 혼란기다. 정복 왕조에게 요구되던 것이 온건함이 아니라 엄격함이던 시기의 역사를 청조의 중국을 이해하는 표준으로 삼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리가 명조의 가을을 명조를 이해하는 표준 시대로 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그는 은연중에 통치제계의 비효율성을 비난하고 있는데 18세기 중엽 이전의 어떤 제국도 그렇게 광대한 영토와 인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그의 비웃음은 조금은 부당하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