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s Labour’s Lost

횡단 보도에 서 있는 뒷모습을 본 순간 지독했던 헛사랑이 정말로 끝났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헛사랑의 끝을 인식하는 순간 적당히 냉정하고 이기적이며 좀처럼 동요하지 않던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 왔다. 농담처럼 원래 그런 사내였고 단지 애정이 시야를 가리는 동안만 친절했을 뿐이었다는 누군가의 조롱 섞인 읊조림이 떠올랐다. 다리가 풀리며 까닭 없이 노곤함이 밀려 왔다. 오랜 시간 내 마음을 사납게 휘저은 폭풍의 끝치고는 허망한 결말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음 속에는 여전히 미적거림이 남아 있다고 믿었던 환상의 끝은 이렇게 초라했다.

여전히 아름답고 고혹적인 표정이지만 그 표정 속에서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매혹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오랜 시간 속에 익숙해진 친구의 얼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남긴 추억은 곱게 풍화되어 있었고, 상처의 잔금은 먼지와 이끼 속에 숨어 들었다.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 피곤함이 스며 들었다. 더 이상 꿈이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을 거란 사실에 안도하며 깊은 잠 속에 빠져들고 싶었다. 나이를 먹어도 잠으로 도피하려는 본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만큼 사랑 또한 버리기 힘들어 했던 과거의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처음 그녀를 발견한 때는 스물 한 살 봄의 일이다. 지겨운 강의 대신 소설을 붙잡고 계단식 강의실의 두 번째 층에 앉아 있던 지기와 나에게 고개를 돌린 소녀는 성숙한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날카롭게 쏘아 붙이던 그녀의 당돌함에 놀랐지만 그보다 더욱 황망했던 것은 그녀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소설을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녀는 내 시야에 늘 고정되어 있었다. 바쁜 걸음으로 낭하를 걸어 다니던 내 눈에 유난히 느린 보폭으로 걷던 그녀를 발견하는 일이 매우 쉬었다는 사실은 차제하고 말이다.

타인으로 인식 밖에 머물러 있던 내가 처음 인식 안으로 걸어 들어간 점심 식사가 기억 난다. 이제 막 가을에 접어든 스물 둘 9월의 어느 날을, 식당의 조리열이 을씨년스럽기 시작한 대기를 조금은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던 그 날의 만남을 내가 얼마나 기뻐했던가? 가벼운 속임수를 통해 알아낸 핸드폰 번호를 외우던 어느 목요일 오후와 짐짓 누군지 모르겠다는 듯 답신을 보냈던 일요일 아침이 떠오른다. 지난 5년을 회고해 보면 그때가 내 삶의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다. 맡고 있는 일이나, 마음의 평화나, 미래에 대한 준비나 어느 것 하나 모자라지 않았으니 말이다.

기억은 어느 사이에 크리스마스 이브의 약수역과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그 해 겨울이 떠올린다. 친구의 전언을 통해 들은 intimate란 단어가 베푼 기쁨의 농도에 희희 낙낙하던 내 모습도 보인다. 지금 생각하면 마냥 귀여운 내 모습이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면서 내가 맡고 있는 일이나, 마음의 평화나, 미래에 대한 준비나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단지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아릿하게 만들었던 추억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멈추어야겠다. 지금은 추억을 어깨 너머로 흘려 보낸 채 새로운 위치와 현실을 받아들일 순간이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사심 없는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해 보리라. 4피트 8과 1/2 인치라는 궤간만큼 거리를 두고 반대쪽 차창에 펼쳐질 내 삶을 보리라 다짐해 본다.

짧은 여행을 끝내고 귀향하는 기차 안에서 지난 5년간의 시간을 꼼꼼하게 되돌아 보았다. 황금기에 근접하기 위해 들였던 노력의 시간과 그것의 단맛을 충분히 향유했던 행복했던 시간, 그리고 긴 몰락이 머리 속을 떠다녔다. 지난 5년을 되돌아 보면 성취감 이상을 보상해 주는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지만 어떤 상황에도 반응할 수 있는 준비 정도는 된 것 같다. 새롭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나, 새로운 기분으로 누군가의 친구가 되는 것, 새로운 마음으로 긴 항해를 시작하는 것. 이제는 어느 하나 두렵지 않다.

나흘 뒤면 시간의 유용함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시기가 끝난다. 짧은 막간극을 거치고 나면 새로운 장에서는 시간이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Anerriphto ho Kybos’ 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까?

[#M_ P.S. | less.. |
Love’s Labour’s Lost는 셰익스피어의 희극인 <사랑의 헛수고>의 원제이다. 왜 이런 제목이 생각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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