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기묘한 우연에 기인한 것이긴 하지만 넬슨은 우리에게도 유명 인사다. 하기사 수많은 바다 사람들 가운데 그만큼 이름을 남긴 사람은 드레이크, 쿡 정도 밖에 없으니 그의 유명세를 기묘한 우연과 결부시키는 내가 되려 이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글의 당초 의도는 앞에서 언급한 기묘한 우연에 초점을 맞추어 넬슨보다는 ‘그’가 더 낫다는 식의 논지를 전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짓은 이런 주장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것을 지지할 유력한 논거의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꽤나 면목없는 행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레스터 서로의 <제로섬 사회>같은 Junk food를 싫어한다면 이런 무의미한 빗대기는 지양해야 한다.

내가 처음 접한 넬슨은 비비안 리 주연의 <해밀턴 부인>을 통해 보여진 어딘가 딴 세상 사람같은 이미지 였다. 그 시기의 난 나의 우상인 비비안 리가 외골수에 명예에 대한 편집증을 앓고 있는 이 인물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비비안 리의 진짜 매력이야말로 버림받는 여성성이 불러 일으키는 묘한 동정심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넬슨의 매력이 명예에 헌신하는 수도사 같은 면모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앤드루 램버트의 <넬슨>은 이런 그의 정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호의적인 중도성향으로 불릴만한 글이지만 그렇다고 거짓을 말하지는 않는다. 넬슨이 뛰어난 전략 감각을 지닌 최고의 야전 군인이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업적이 역사 속에 묻혀 버린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결과이지 그의 천재성 때문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힌다. 해군력에 의존하는 전통과 노련한 바다 사람들이 쌓은 체계를 통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는 사실이 행간 이곳 저곳에 촘촘하게 박혀 있다.

단종진을 위주로 펼쳐지던 방어 성향의 전투를 2열 종대를 중심으로 한 공격 성향의 전투로 개혁한 사실과 훈련을 통해 얻어진 속사성이 영국이 바다를 제패한 핵심 동력이었다는 사실은 흥미로웠다. 바다를 지배하는 방식은 육지를 지배하는 방식보다 저렴하지만 그럼에도 최소한의 거점은 정복해야 한다는 해양 전략의 기본 지침을 전제로 진행되는 넬슨의 지중해 전략도 꽤나 호기심을 자극했다. 또 해협 함대로 불리는 영국 함대의 본대가 나폴레옹의 영국 점령 계획에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넬슨의 함대가 별동대로써 전략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는 분석은 명쾌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우리가 3시간 만에 이길 수 없을 지는 몰라도 4시간 안에는 이길 수 있을 것’ 이란 그의 말이다. 그의 무모할 정도로 강렬한 공격 성향과 합리성 속에 감춰진 광기가 손에 잡힐 듯 잘 묘사된 문장이지만 현재의 내 삶에는 햇살처럼 끌리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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