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자히르

코엘료라는 이름을 들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베스트 셀러 작가인 그의 화려한 작품 목록이 아니라 어느 추운 겨울 서가에서 처음 이야기를 나누게 된 대학 동기와의 우연한 만남이다. 그녀는 정오가 가까워지는데도 불구하고 술이 깨지 않는 얼굴로 중남미 문학 섹션에 기대어 있었다. 일거리에 지친 나는 <수도원의 비망록>을 찾아 서가를 되집다 그녀와 마주쳤고 평소의 습관대로 눈인사를 건네며 슬며시 지나치려던 차였다. 그때 그녀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집어들며 먼저 말을 건넸다.

[#M_ Dialogue| less.. |

이 책 제목. 왠지 끌려.

베로니카라는 이름이 얼마나 당황스런 과정 끝에 생겨난 이름인지 알게 되면 아마 그렇지도 않을 걸.

날 너무 무시하는데… 성녀 베로니카 정도는 알고 있다고.

전설을 부정하는 과감한 몇몇 오르독스에 따르면 베로니카는 베라 아이콘이 연음되면서 만들어진 말이래. 성녀의 전설 역시 그런 의미에서는 사기는 아닌 셈이지.

나 권태로워 보이지 않니?

제목하고 달리 절반쯤 읽게 되면 죽기로 결심하는 일같은 것은 생기지 않을 것이야.

왜? 코엘료의 문장이 영혼을 붙잡니.

아니 의도를 파악하게 된 순간부터 잠이 밀려 오거든. 권태로는 죽어도 졸려서 죽는 사람은 없잖아?

_M#]

많은 사람들이 코엘료에 열광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코엘료에 열광하기 보다는 재주 많은 베스트 셀러 작가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마는 경향이 있다. 그의 소설은 놀랄만한 흡입력 지니고 있어서 영혼의 탐험가를 자처하는 보통의 작가들과는 달리 읽을 만하다. 하지만 그 이상을 발견하려는 시도는 지난하며 성과가 나지 않는 과정이다. 그는 대가들이 선보인 날카로운 통찰력과 구성이라는 극적 장치가 선사하는 카타르시스를 아직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더욱이 그의 소설은 현실의 권태로움을 극대화 시킴으로써 무언의 호응을 얻어낸다. 반면 아직까지도 코엘료는 소설 속 인물들을 컨트롤하는데 서투르다. 코엘료가 창조한 인물들은 그의 부드러우며 흡인력 있는 문체에 사로 잡혀 이리 저리 방황한다. 하지만 방황 끝에 그들이 서 있게 되는 곳은 항상 조금 엉뚱한 장소이다.

<오! 자이르> 역시 이런 코엘료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버림 받는 자와 버림 받게 만든 자 사이에서 우호적인 갈등이 벌어지나 했더니 이내 아내를 찾아 떠나는 <엄마 찾아 삼만리>가 되어 버린다. 사실 이 소설은 ‘나의 아내’인 에스텔라에 관해 거의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에스텔라의 여행은 작위적으며 소설을 진행시키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지만 그 여행을 정말 필요한 것었냐는 독자의 의문을 작가는 마지막 순간에 부정해 버린다. 이 소설에서 가장 비현실적이며 제대로 된 역할을 부여 받지 못한 캐릭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의 자히르’인 에스텔라 일 것이다. 하지만 에스텔라의 비현실적인 캐릭터와 다르게 ‘나’에 헌신하는 마리의 캐릭터는 일견 비현실적이지만 음미할 수록 리얼리티가 묻어나는 친근한 캐릭터로 변화한다.

동양인으로 느끼는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서구의 작가들이 지혜 혹은 영혼의 원천으로 자주 언급하는 동양적 주술이라는 소재가 매우 식상하다는 사실이다. 이슬람 교육을 받은 주술사가 등장하고 ­ 이 시점에서 난 맥파석이 예카데리나로부터 데리고 탈출 못한 강 건너편 부족의 후손이 미하일이라는 멋없는 생각을 잠시 했다- 이민족에게 흘러 들어온 전설이 민족의 고유의 전통이 되는 소재의 혼란을 바라보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연금술사부터 지금까지 그의 대표작들 하나 하나가 현실보다는 이런 신비감의 아우라를 통해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매우 편리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비겁한 이런 접근법으로 말이다.

그러나 베스트 셀러 작가로서의 코엘료는 여전히 건재하다. 그의 문장은 유성처럼 텅 빈 하늘을 수놓고, 이내 독자에게 몰입의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그가 안내하는 그 길의 끝에서 진짜 영혼의 안식을 얻는 일은, 있음 직한 허구인 소설을 찾아 내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그 길의 끝에서 보게 되는 것은 더 강력한 영혼의 진통제를 찾게되는 스스로이거나 허구 같은 사실을 인정하라고 강요당하는 수모를 겪는 것 뿐이다.

<오! 자히르>에서 코엘료는 지금껏 그가 사용한 장치가 가운데 가장 세련된 기교를 구사했다. 하지만 그 기교를 따라 이야기의 끝에 도달했을 때 독자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코엘료 스스로가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이라 믿고 있는 구겨진 자화상 한 점뿐이다.

2 thoughts on “오 자히르”

  1. ‘향료전쟁’ 트랙백 잘받았습니다~
    오~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최신작품이죠? 이책도 꼭 볼려고 리스트에 넣어 두고 있어요. 다 보면 트랙백 날릴께요 ^^; 좋은 하루 되시길~

  2. 네. 지난 여름에 나온 최신작이예요. 초반의 팽팽한 긴장감이 코엘료 특유의 분위기게 녹아버린 단점이 있긴 했지만 한달음에 읽을 만큼 몰입은 보장하는 소설이었던 것 같아요.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