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브라질

<붉은 브라질>은 알렉산드르 6세가 중재한 토르데실라스 조약 이후 브라질에 대한 영유권을 소유하게 된 포르투칼에 대항해 이곳에 프랑스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출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출판사의 소개글이나 신문의 서평과는 다르게 결코 끔찍한 유혈이 담긴 소설은 아니었다.-놀랍게도 탈출이 가능한 환경이었다- 아니 어쩌면 유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적절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가이스 밀턴의 <위대한 두목 엘리자베스>에 묘사된 초기 잉글랜드 이주자들이 직면한 상황과 비교해 보자면 이들이 겪게 된 상황은 오히려 신의 축복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혜택 받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사실 제일 처음 식인종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을 때 나는 내장을 정성껏 전시하고 꼬쟁이에 사람들 꿰며 머리 가죽을 벗기는 사람들을 상상했다. 지금껏 읽은 아메리카 식민지의 역사에서 결코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단골 소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소설에서 머리 가죽이 벗겨지는 위협에 처한 존재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가장 끔찍한 존재는 식인종인 투피족이 아닌 네델란드 재침례파이며-개인적으로는 이들이 왜 그토록 많은 소설에서 끔찍한 존재로 다루어지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열대의 장독보다 더 무서운 것은 종교 분쟁과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유럽인들의 야욕이다.

이 책의 메세지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너무나 선연하게 들어나 감히 딴 생각을 품을 수 없을 정도이다. 사건 전개 역시 산만하지 않고, 주어진 역할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구는 캐릭터를 발견할 수 없다. 역사적 사실에 작가가 의도한 메세지를 창조하기 위해 삽입한 주인공들 역시 자연스럽다. 한마디로 콩쿠르상 수상을 위한 모범 답안같은 소설이다.

그러나 식민지 건설의 야욕과 대비되는 식인종들의 건강한 평화로움이 이 책에 담겨진 전부는 아니다. 열대를 상징하는 콜랑브와 규칙과 과업을 상징하는 쥐네트의 결별과 재회 역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오롯이 소설 전체를 담아내는 그릇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의 프랑스인들이라면 이야기의 숨겨진 축에 더 큰 관심을 보이며 사건이 암시하는 바를 놀라운 기분으로 받아들였을 것 같다. 16세기 중반의 프랑스와 그들이 겪게 될 미래를 예언하는 콜리니 요새야말로 쥐네트와 콜랑브의 기구한 운명보다 더 큰 호기심을 자극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쥐네뜨와 콜랑브도, 칼뱅파의 세운 최초의 아메리카 식민지로 기록된 콜리니 요새도 아니다.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한 문장은 식인 문화에 대한 ‘파이 로’의 언급이다. 적의 용기와 힘을 흡수하기 위한 식인 습관을 설명하며 임종을 앞둔 그가 식인 문화의 재물이 되어야 할 운명을 지닌 전쟁 포로 한명과 자신의 육신을 맞바꾸자는 부분은 평론가들의 눈에는 하찮은 에피소드에 불과했겠지만 문장 한 올 한 올이 모골이 송연하게 만들 정도로 보기 드문 통찰력을 품고 있었다. 평범하지만 정직한 소설이란 이런 소설이 아닐까 싶다.

[#M_ P.S. | less.. |
간접적이긴 하지만 이 소설에는 칼5세도, 프랑스와 1세와 앙리 2세도, 칼뱅와 콜리니 제독, 프랑스와 기즈도 등장한다. 그리고 이 소설이 끝나는 시점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앙리 2세의 급사와 프랑스와 2세의 등극 사이의 어느 시점으로 보인다. 이듬해(혹은 그해) 앙부와즈의 음모로 불리는 유혈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반백년 후 앙리 4세의 암살로 마무리 지어진다.

앙부와즈의 음모로 유명한 기사 빌가뇽과 이 원정대를 이끈 사람이 동일이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로 원정 과정을 통해 변모하는 빌가뇽의 캐릭터 묘사는 경탄스러웠다. 기독교 역사에서는 빌가뇽을 브라질 프로테스탄트 식민지의 개척자로 설명하고 있고 앙부와즈 사건에서의 그의 역할을 변절로 매도하거나 슬쩍 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소설에서 그는 융통성 있는 자유 사상가에서 극렬한 카톨릭 지지자로 변화하는데 역사적 맥락을 토대로 보면 이 부분이야말로 이 소설의 또 다른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_M#]

2 thoughts on “붉은 브라질”

  1. 줄어드는 만큼 다시 채워지곤 해서 재고량은 여전히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요. 상경하기 전에 전부 읽고 가야 하는데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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