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rmur

1.
<나니아 연대기>가 도착했다. 묵직한 두께에 단색의 깔끔한 장정이 입혀진 책이었다. 어떤 이들은 시공사라는 이유만으로 이책을 외면하겠지만 근래에 보기 드물게 정직한 책이었다. 누구나 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단지 시공사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취급을 받는다면 혹은 ‘증오받아 마땅한 사람’의 아들 역시 증오 받아야 한다면 구족을 멸하던 과거와 오늘의 차이가 과연 무엇일까 하고 조심스럽게 고민해 본다. 길게 썼지만 사람들이 이 매력적인 판본을 책과는 아무런 연관 없는 이유로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
오후에는 반주 덕분인지 깊은 낮잠을 잤다. 평화로운 오후의 낮잠을 얼마만에 즐겨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스르르 잠에 빠져 해가 저문 다음에야 일어났다. 사위는 벌써 어둠에 젖어 있고 바람은 겨울 바람처럼 차다. 어느 사이에 겨울이 훌쩍 다가온 모양이다. 의지를 모으고 가능한 모든 실행 수단을 끌어 모아야 할 겨울이 벌써 다가왔다.

3.
플루타크의 <비교열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먹지 않으면 그만이다’라는 문장이다. 특이한 조리법으로 요리된 아스파라거스가 나왔을 때 카이사르가 했다는 말인데-물론 그는 그말을 던지고 아무 상관 없이 특이한 조리법으로 요리된 그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이 문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용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조용히 식탁 밑으로 손을 내려 놓으면 된다. 조리법이 이상하다며, 손님을 맞는 예의가 아니라며, 미각을 거스르는 음식이라며 주인을 비난하는 것은 혹여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더라도 추태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이 경우 정당한 이유같은 것은 없으며 수십년 동안 다른 태도를 가지고 살아온 이런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또 모든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면 충분히 논의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이거나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당한 이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논의의 가치까지 없다면 무엇때문에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야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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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요즘 아버지와 나의 애청 프로그램은 명대와 청대의 역사를 다룬 두 편의 역사 드라마이다. 아버지와 나는 강희제의 통치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숭정제가 자살하는 장면을 보며 중국이란 나라에 대해 생각한다. 겉으로는 강력한 제국의 위용을 뽐내고 있지만 내부는 허약하기 그지 없는 중국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책들이 중국의 부상과 미래의 초강대국으로써의 위치를 고찰하고 있지만 화려한 수치 뒤에 숨겨진 역사의 수레바퀴가 더 또렷하게 보이곤 한다.

국가의 적정 규모에도 내부화를 통한 거래 비용의 절감이라는 논의의 가정을 도입할 수 있다면 확언하건데 중국은 내부화를 통한 거래 비용의 절감보다 규모로 인한 비경제가 더 큰 비효율적인 거대 기업에 비견될 수 있다. 외부의 충격과 내부의 혼란 한방이면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이 분명한 그런 거대 기업 말이다.

효율적인 시스템은 시스템에 대한 시스템 하부의 신뢰에서 비롯된다. 조직의 건강성의 바로 미터인 기율과 복종의 미덕이 쉽게 깨지는 시스템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조직의 건강성을 자유로운 분위기와 의사 전달의 속도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과연 이것이 조직의 존재 목표에 보다 근접하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기율과 복종이 없다면 조직은 아예 유지 될 수 없는 반면 자유로운 분위기와 의사 전달의 속도는 장기적인 성공의 조건이지만 생존의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5.

_M#]

2 thoughts on “murmur”

  1. 나니아 연대기는 묵직한 것이,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더군요. ^^

  2. 네. 한손으로 오래 들고 보기에는 무게도 꽤 나가구요. 한 덩치하는 것이 다른 책들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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