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기

로마시대 파피루스에는 단어 사이에 띄여쓰기가 없고 마침표등의 문장 부호가 없었다고 한다. 혹자는 이런 사실을 근거로 텍스트의 불완전성을 지적하지만 이런 스타일이야말로 구술 필기라는 전통에 근거한 합리적 발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속기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언제 문장이 끌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문장 부호는 불필요한 것이며 단어 사이를 띄는 구분은 속기력의 낭비일 수도 있다. 어차피 제한된 독자층만 존재하던 고대 사회에서 띄어쓰기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 있다면-물론 띄여쓰기가 발명되지 않았을 것일테지만, 또 당시의 파피루스는 너무 비싸서 띄여쓰기를 통해 공간을 낭비할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구태여 존재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사실 내전기의 리뷰를 이런 사소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로 시작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내전기>에 관해 쓸 말이 많지 않아서 라고 내심 짐작해 볼 따름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듯 <내전기>는 <갈리아 전기>에 비해 난잡하다. 혹자는 <내전기>가 동시대인들에게 내전을 정당화하기 위한 의도로 쓰여진 글인만큼 조심스럽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하지만 단언하건데 내전기에서는 카이사르 특유의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갈리아 전기>에서 보여주었던 명쾌한 판단력과 과감한 행동력 대신 멈짓거림과 내적 고뇌가 두텁게 카이사르 자신을 감싸고 있다.

물론 갈리아 전쟁 역시 격전의 연속이었지만 내전 동안의 전투가 더 힘든 전투였다는 이유를 근거로 카이사르를 변호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복의 영광을 마무리 짓는 문학적 개선문인 <갈리아 전기>에 비해 <내전기>는 자기 회고의 성격이 더 강하다. <내전기>는 아군과 적군이 되어버린 로마인들에게 자신의 정당성을 설득하기 위해 쓰여진 글이 아니라 카이사르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치료제의 성격이 더 두드러진다.

하지만 <내전기>에는 <갈리아 전쟁기>보다 더 흥미로운 몇가지 특징이 있다. 쿠리오의 아프리카 원정을 별개의 독립된 장으로 다루고 있으며 그의 연설문을 직접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던지 갈리아 전쟁 당시 그의 부장이었던 라비에누스에 대한 묘사가 폼페이우스에 대한 묘사보다 많다는 사실같은 것들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내전의 상대편 지휘관인 폼페이우스보다 라비에누스에게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발언의 직접 인용을 통해 보다 더 생생한 캐릭터라이징을 시도한 카이사르의 의도가 꽤나 궁금했다. 물론 정답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천년 전의 이야기를 증언할 사람은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으며 기록도 이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늦은밤 제멋대로 의도를 상상하며 이런 저런 상상에 빠지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4 thoughts on “내전기”

  1. 가끔은 띄여쓰기 덕분에 한참이나 고민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발명에 감사할 따름이지요. 띄여쓰기가 없었다면 책은 더 얇아졌겠지만 대신에 더 읽기 힘들고 접근하기 힘든 물건이 되었을 것 같아요.

  2. 카이사르는 라비에누스한테 감정이 좀 쌓였어요. 루비콘 강을 건널 때 자신을 배신하고 폼페이우스 측으로 건너갔기 때문이죠.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으로 라비에누스를 절대적으로 신용하고 있어서 더 충격이 컸을 겁니다. 드물게 화가 난 카이사르는 배신자 라비에누스를 보다 잔인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라비에누스 나쁘다고 전하려 했던 건 아닐까요…이상, 로마에 관심많은 여중생 노이였습니다!

    1. 설은 매우 다양한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설은 내전의 후반기의 사실상의 총사령관이었던 라비에누스를 적국의 야만적인 왕처럼 묘사함으로써 로마인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 것이 중요했다라는 설이예요. 로마 국가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행동하는 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적이 가진 명분이 증오심에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것이죠.

      또 다른 설가운데 하나는 라비에누스가 있었다면 내전을 큰 희생 없이 끝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시선이 우호적일 수는 없었다는 점인데 이 부분에 동감이예요. 내전기에 아프리카 전선과 일리리쿰 전선의 패배. 내전 종반부의 문다의 회전은 사실상 라비에누스가 옵티마테스에 가담함으로써 벌어진 역사적 사건으로 풀이 되거든요. 뭐 라비에누스가 포풀라레스에 계속 남아 있었더라면 파르살수스 회전 없이 내전이 평화적으로 수습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정도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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