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종말

1999년
지겨운 겨울 방학이 계속되고 있다. 일몰은 조금씩 늦춰지고 있지만 아직 겨울은 그 기세를 꺽을 줄 모른다. 차가운 바람이 창문의 작은 틈새를 타고 황소 바람이 되어 뺨을 움푹 패이게 만든다. ‘베르누이의 정리’라는 말보다 ‘황소 바람’이란 단어를 먼저 떠올리는 내가 이곳에 앉아 있는다는 것이 옳은 결정인지는 여전히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무엇 하나 생각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세기말적인 몽롱함에 뇌리를 침범 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미래에 대한 결정을 잠시 유보하려는 얕은 꾀로 금군과 잠시 외출하는 길에 신간을 하나 집어 왔다. 에코와 제이 굴드, 들뤼모의 인터뷰를 편집한 밀레니엄에 대한 담론인 <시간의 종말>이란 표지가 근사한 책이다. 사실 무엇보다 <풀하우스>의 저자인 제이 굴드가 나랑 닮은 얼굴이란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잡아 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밀레니엄>이후 웬만하면 이런 종류의 책은 거부하기로 굳게 다짐했었지만 양치기 미래 학자인 후쿠야마와 다르게 이들의 담론은 문헌학에 토대를 두고 있지만 이성적이고 위트가 넘친다.

21세기의 시작은 2001년이다. 1000이라는 오래된 문화적 미신이 만들어 낸 디스토피아가 판치는 지금 이 책은 분명 음미할 만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BC1년 12월 31일과 AD1년 1월 1일이 고작 하루 차이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라면 이 ‘천년의 종말’이 지니는 의미를 운명론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으리라. ‘시간의 종말’이란 이 시대의 화두는 그저 오래되어 거부할 수 없는 문화와 사상이 쌓아올린 인식의 끝을 알리는 현상에 불과하다. 우리가 인식하는 관념 시계는 몇달 뒤를 하나의 위대한 천년이 끝나는 시기로 기록하겠지만 만약 인류가 12개의 손가락을 갖은 채 진화를 멈추었다면 우리의 새로운 밀레니엄은 우리 모두가 땅거름이 된 후의 이야기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2005년
집을 떠나기 전에 꼭 한번 다시 읽고 가기라 마음 먹은 책가운데 하나가 바로 <시간의 종말>이란 책이다. 2005년도 저물어 가는 지금
이미 새로운 밀레니엄은 시작되었고 백 년마다 반복되는 지리한 논쟁 속에서 새로운 ‘세기’도 시작되었다. 90년대 후반의 몽롱함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권태로움을 느끼며, 전쟁과 기아 등 인류가 새로운 시대에도 해결하지 못한 미제들은 여기 저기에 쌓여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십 년 전의 논란을 잊고 현재를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고등학생에서 스물 다섯 먹은 청년이 되었지만 ‘시간’이란 PV나 FV를 계산할 때 화폐의 기회 비용 혹은 할인률에나 써먹는 개념이 되었으며 ‘시간의 종말’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 보다는 각자에게 주어진 시계 안에서 어떤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가에 목을 매는 평범한 청년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문화적 관념 시계가 불러올 논란은 90년 후에나 다시 찾아 올 것이고 그때에는 핼리 혜성을 두 번 본 늙은이가 되어 있거나 아니면 지상에서의 운명을 다했을 것이란 사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 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잠시 해보지만 말이다.

결국 이 책에 내게 남긴 것은 어느 날 단지 <풀하우스>를 읽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한 눈에 반해 몇 주 동안 열렬하게 사랑했던 기억과 들뤼모의 책을 서른이 넘기 전에는 읽어보겠다고 마음 먹은 것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2005년의 마지막 날에는 이 책을 다시 읽고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 보련다. 해마다 연말을 같이 보냈던 멤버들도 이제는 늙었고, ‘술잔 속에 새해를 맞는 것처럼 허망한 것은 없다’라는 사실 정도는 어렴풋이나마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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