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막을 끝내며

요즘의 나는 한 막이 내려가는 순간을 새로운 막이 올라가는 순간을 감상적인 어조로 기록해야만 한다는 심리적 당위성에 쫓기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당혹스러운 마음이면에는 지금껏 그래왔다는 습관의 관성이 존재한다. 기록하지 않은 인생이야말로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비참하게 깨달은 이후에 생긴 습관은 좀처럼 기세를 꺾을 줄 모른다. 결국 습관의 노예인 나는 쉴틈 없이 내리는 함박눈을 지겨워 하며 이렇게 펜을 들 수 밖에 없는 운명인 모양이다.

하지만 막간극을 포함하여 지난 막을 돌이켜보면 꽤 괜찮은 막이 아니었나 싶다. 다시 공부하는 버릇을 되찾았고, 달콤한 사랑보다는 책읽기를 더욱 즐기게 되었으며, 사람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사실들로 인해 더욱 폐쇄적이고 고립화된 인간이 되기는 했지만 세상만사가 trade-off 관계에 있다는 저열한 합리성을 인정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까닭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누리는 편안한 만족감과 행복감을 오랜 시간 멀리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랜 기다림과 숙성의 시기를 벗어나 성과 획득을 위해 긴장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긴장이 가져다 주는 흥분을 꺼리는 바는 아니지만 사람에게는 누구나 편안함을 좋아하고 지속적인 긴장을 피하고 싶은 기본적인 욕구가 있으며 이는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내일이면 법에 의해 강제되었던 휴가 아닌 휴가가 끝난다. 새로운 막을 살아갈 준비는 이미 끝냈다. 이제 남은 것은 한번 부딪쳐 보는 것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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