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플 라인

불우한 발루아와 달리 부르봉朝를 다룬 소설들은 꽤 많다. 그것도 왕조의 개창자인 앙리 4세부터 루이 16세 시대에 이르는 전 시대에 걸쳐 말이다. 하지만 이런 소설들로 역사를 갈음해 보려는 시도는 위험천만하다. 소설은 하나의 가설 혹은 하나의 가능성을 가볍게 언급할 뿐이다. 게다가 대개의 역사 소설에는 어떤 철학적 혹은 정치적 이상도 담겨져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소설과 진짜 역사를 구분하는 뚜렷한 주관이야말로 역사 소설을 즐기기 위해 구비해야 할 첫번째 요건이다. 하지만 하나의 당황스러운 가설을 논문으로 발표해 웃음거리가 되기보다는 가벼운 에세이 혹은 팩트 소설로 발표하는 영악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써는 첫번째 요건조차도 점점 충족시키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앙리 4세의 정부로 유명했던 데스트레 자매를 그린 작품을 소재로 삼은 <퍼플 라인>은 영악한 시대에 어울리는 책이다. 지적이고 정교하며 조심스런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 책은 위대한 문학적 유산과 역사 인식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위대한 문호와 날카로운 관찰가들이 남긴 지적 사고의 전통을 제거하고 나면 이 책에 남는 것은 비겁함과 게으른 서사뿐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나쁘지는 않다. 스무살쯤 서점가에서 유행하던 <왕비의 침실>같은 경우 저자는 소설에 담긴 내용이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투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겸손하게 어떤 결론도 내리고 있지 않다. 그저 그림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세운 가설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한번 개진해 보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이 개진은 예상외로 호소력이 있다.-호소력과 진정성은 별개의 문제다- 역사적으로 저자가 다룬 문제의 중요성은 크지 않지만 재미난 소재임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흥미로운 소재 이상의 것은 없다. 소재를 변주해 만들어 낸 주제는 지금껏 시간이 쌓아온 지적 사고의 표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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