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mas Eve

침묵 속에서 책과 함께 보낸 이브도 나쁘지는 않았다. 저녁을 함께 보낸 소설은 예상외로 재미있었고 이불 속의 포근함은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하지만 퉁명스런 어조로 거절한 몇몇 제의는 마음에 걸린다. 사실 유희로 하루를 날리고 싶지 않다는 변명이나, 바쁘다는 핑계는 거짓말이었다. 다만 나에게는 지난 여름부터 계획해 놓은 작은 기다림이 있었을 뿐이다. 이제 스스로에게 부과한 기다림의 시간은 끝났고 기분 좋은 편안함만이 남았다.

이브의 저녁을 보내며 내년에는 스스로가 ‘시라노’ 보다 못하다는 굴절된 자기 비하에서 벗어나 보자는 결심을 했다. 잘난 척을 멈추지 못하는 나쁜 버릇이 있긴 하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 난 꽤나 지적인 대화 상대가 될 수 있으며 이해력 좋은 친구도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호의 예금’이 조금 많이 남아 있다. 인고의 반년을 보낸 다음에는 제멋대로 젊음을 누려보리라 다짐한다.

시간의 역사에서 B.C. 1년 12월 25일은 A.D.1년 1월 1일에서 일주일을 관습적인 이유에서 기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로 오늘이 특별해야 할 명시적인 이유는 없다. 결국 나에게 크리스마스란 고작 한해의 마지막 주가 시작되는 날이란 의미 밖에 없다. 그러니 돋움볕부터는 한 해의 마지막 일주일을 지나간 시간보다도 더욱 의미있게 살아보리라 살짝 주먹을 쥐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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