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의 노래

콜린 맥컬로우의 <트로이의 노래>는 <로마의 일인자>가 쓰여지기 전의 습작으로 평가되는 소설이다. 하지만 습작이라는 이유로 재미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녀의 다른 소설들에 비하면 구성력이 조금 약하기는 하나 특유의 감각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내놓은 또다른 대안을 음미해 보는 과정은 즐겁다. 아니 속된 말로 하자면 그녀의 비틀기 혹은 에둘러 치는 솜씨를 감상하다보면 책장은 훌쩍 넘어간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녀의 솜씨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고전에 기록된 전승의 형태를 정확하게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기억을 토대로 이 소설을 읽어야만 그녀의 독창성과 욕망의 모닷불이 격렬하게 타올랐다 부드럽게 꺼지는 과정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다. 게다가 이번 소설에서 그녀는 몇몇 인물의 새로운 형상화와 갈등의 근원을 넓히는데 성공함으로써 동일한 소재를 다룬 역사 소설 가운데 발군의 재미를 보여주고 있다.

4 thoughts on “트로이의 노래”

  1. <<로마의 일인자>>를 생각해보면 ‘탁월한 스토리텔러’라는 지인의 평가가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의 ‘탁월한 스토리텔러’ S가 쓴, 비슷한 소재를 다룬 책을 보면 그는 왜 이 정도밖에 가지 못했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오는데 말이죠. 물론 책날개에 간단히 적힌 S의 프로필만 봐도 그 이유는 어느 정도 짐작합니다만. 아무튼 <<트로이의 노래>>는 아직 접하지 못했는데 기회가 닿는대로 꼭 읽어보고 싶네요.

    이전에 몇 번 들른 적이 있었는데 ‘콜린 맥컬로우’에 대한 글을 보고 처음으로 몇 자 적습니다.

  2. S가 누굴까 한참 고민해 보았지만 정답이 떠오르지 않네요. ROMA SUB ROSA 시리즈를 쓰고 있는 S.Saylor인가요? 탁월한 스토리텔러와 비슷한 소재라는 것만으로는 이상은 짐작하기 어렵네요.

    저도 콜린 맥컬로우의 소설에는 유연한 인물 형성과 섬세한 상상력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생각해요. 대하역사소설이라는 장르가 공항 소설의 아류 정도로 취급받는 현실을 고려해 보면 그녀에 대한 평가가 야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기는 하지만요.

  3. 죄송합니다. S는 시오노 나나미이고 책은 <<로마인 이야기>>를 말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너무 불분명하게 표현한 듯 합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성공으로 미루어 한국 사람들이 역사를 소재로 한 모종의 컨텐츠에 목말라했다는 건 확실합니다. 대하역사소설이라는 장르가 지금껏 그 목마름을 해소해주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네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탁월한 스토리텔러’가 꽤 괜찮은 평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차피 재미있는 ‘스토리’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 독자에게서 받는 평가라면 말이죠.

  4. 아. 그랬군요. 되려 엉뚱한 작가를 찾아 끼워맞춘 제가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 할 듯 싶네요.

    로마사에 관련되어서는 그녀를 마냥 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그러면서도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대광서림에서 나온 기번의 쇠망사같은 경우에는 로마사가 꽤나 친숙하다고 자부하는 저로서도 서술만으로는 명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의 문맥에 맞지 않는 번역이 많거든요. 타키투스의 쓴 2개의 저술은 번역은 좀 낫지만 기번에 비하면 뉘앙스가 복잡하구요. 무엇보다 그녀를 계기로 시장이 넓어져 시중에 꽤나 괜찮은 책들이 번역되어 나오기 시작했으니까요.

    독서라는 행위가 작가와 독자사이에서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화라면 맥컬로우의 경우에는 구성이 점차 복잡해지고 심도를 더해가는 상황을 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구성 능력이 탁월한 스토리텔러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능력이라는 사실은 잠시 논외로 놓구요. 더욱이 ‘욕망’에 관해서라면 가장 낮은 층위부터 가장 높은 층위의 욕망까지 그녀를 통해 보지 못할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개인적인 선호의 견지에서는 철학자인양 하는 얼치기 작가나 명상가를 흉내내는 사이비 작가보다는 좋은 이야기꾼인 작가의 작품을 더 좋아 한답니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짧은 메르헨인 <이야기꾼>에서 무엇이 작가의 본령인지 유감없이 보여주었으니 탁월한 스토리텔러라는 평가도 마냥 부족한 평가는 아닐테지요. 무엇보다 ‘스토리’ 조차 없는 글은 ‘스토리’ 이상을 찾지 않는 독자보다 더 나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글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목적은 입으로 전승되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기 위한 것이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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