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그리고 리뷰

1.
스팸리퍼러를 통해 드디어 블로그의 실제 방문자수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동안 거품이라 믿어왔던 것의 실체는 야후 bot의 빈번한 방문임이 밝혀졌고 더 이상 얌전한 표현으로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는 짓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니 이제야 거침없이 삶의 단편을 제대로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2.
백주념 기념관 4층에 위치한 대열람실은 키오스크로 좌석을 선택하는데 그 과정에는 랜덤의 묘미라는 것이 있다. 칸막이로 막히지 않은 넒은 책상을 독점하는 맛도 있고 무엇보다 의자가 편하다. 아니 그보다 더한 즐거움은 커다란 창을 통해 내려다 보이는 전경이다. 좁고 답답한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 이곳은 근래들어 가장 큰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장소다. 게다가 일요일날 아침 열람실의 차분함은 기이할 정도로 마음을 안정되게 만든다. 물론 형님벌 되는 분들의 노곤한 피곤함과 덜여물어 시끄러운 아이들이 산통을 깰 때도 있지만 사람들이 은근슬쩍 들여오는 커피와 초콜릿의 향은 늘 좋다.

3.
다시 공부가 즐거워 지기 시작했다. 빠르게 넘어가는 페이지는 탄력을 받기 시작했고, 정신은 또렷하게 깨어 있다. 삶에는 자신감이 넘치고 시간은 여유롭다. 이 상태라면 서푼짜리 자존심을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두렵지 않으며,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는다. 피곤한 육신이 내는 뻣뻣한 소리와 깊게 빠져드는 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좋아할까?

4.
복학을 하고 나서야 외롭고 괴로웠던 그 시간이 진정한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시간에 내가 스스로에게 쌓아올린 것들의 풍성함과 유용함에 하루 하루 놀란다. 끊기지 않은 흐름 덕분에 난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고, 많은 것을 접할 준비가 되어 있다. 게다가 가장 예민한 시기에 상처 받지 않았으며 세파에 무너지지도 않았다. 잃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획득했음을 확인하는 순간을 늘 즐겁다.

5.
써 프랭크 커모드에게 헌정된 셰익스피어의 평전을 하나 읽었다. 앤서디 홀든의 그 책은 커모드의 것에 비하면 다분히 센세이셔널한 소재들로 채워져 있었지만 화려한 도록 덕분에 매우 소란스러우면서도 재미난 평전이 되었다. 아니 두께에 비해 소모 시간도 적었고, 연한 커피를 마시는 tea break 동안 읽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우아한 장정과 세련된 편집이 일품이었다. 블랙 레이디를 추적하는 과정이나 점잖은 셰익스피어 연구가들이 결코 언급하지 않는 가십에 관해 그도록 진지한 열정을 받치는 작가에게 살짝 경의를 표했다. 물론 커모드의 셰익스피어에 비하면 홀든의 그것은 타블로이드 신문처럼 재미있고 쉬우나 그가 집어낸 핵심 중에 독창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다.-게다가 속된 말로 가격이 착하지 않다. 가격은 나중에 서점에서 알게 되었다-

6.
연말에 읽은 <옥스포드운하 살인사건>에 대한 리뷰를 쓰는 것을 포기했다. 콜린 덱스터의 시리즈는 유명세답지 않게 감으로 때려 맞춰도 될 정도로 싱겁고, 하드보일드에 육박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다스럽다. 추리 소설의 고전이라 불릴 것들에 비하면 격이 떨어지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4 thoughts on “일상 그리고 리뷰”

  1. 전 아예 bot차단을 해놓았답니다. 워낙 방문자 수가 적어 차단이 되었는지 안되었는지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지만요 ^^; 공부에 힘이 받기 시작한다니 기쁜 소식이네요- 전 학원이 끝나고 잠깐 열심히 하나 했는데 다시 힘이 빠지려고 하네요 ㅠㅠ

  2. 제가 즐겨 앉는 자리를 거칠게(혹은 시끄럽게) 침범하는 아이가 하나 생겨서 심각하게 새로운 자리를 개척할까 고민중이예요. 공부하기 싫은 아이 억지로 앉혀 놓은 듯 두서 없이 구는데 정말 대단한 정도예요.

  3. 외로웠던 시간 그동안 쌓아놓은 것의 풍성함에 스스로 놀란다에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저도 요즘 느끼고 있거든요. 죽은 시간이 아니었구나 하고요. 공부에 탄력받았다니 제가 지구력의 버프를 걸어드릴께요:) 휘리릭 뿅 퓨전~

  4.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이래저래 불안했는데 다시 사람들 틈에 섞여보니까 그 시간이 단순히 폐품처리된 쓸모 없는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라구요.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 방황하고 힘들게 돌아갔을테죠? 저도 같은 것으로 하나 걸어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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