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antankerous person

1.
22살 무렵의 난 유난히 집에 내려가는 일이 드물었던 것 같다. 첫번째 이유는 맡고 있는 일이 제법 많아서 였고, 두번째 이유는 열심히 쫓아다니던 그 사람을 한 시간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집에 내려가는 날은 전날부터 콧노래를 흥얼거렸던 것 같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집에 내려간다는 사실을 곧바로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환한 웃음도 감돌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나이를 네 살이나 더 먹은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집에 가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한다. 집에 가기 위한 치밀한 도상 계획과, 가져갈 옷과 책 목록까지 작성한다. 내일 이 시간이면 누이들을 괴롭히며 거실에 널부러져 있을거란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벌써부터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하다.

2.
애정을 바라던 사람에게 어느 순간부터 우정을 바라게 되었다. 시간이 좀 흐르자 인정을 원하게 되었고 이제는 친절을 바란다.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무엇을 바라게 될까? 사실 바랄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까 두렵다. 바랄 것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그 어떤 날에는 소원한 관계를 지나 망각이 시작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난 스스로가 부끄럽다. 의도를 곡해한 것은 항상 내 쪽이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수년 전에 씌여진 문장의 의미가 오늘에서야 눈에 들어온다. 지금껏 내가 알아 왔다고 자신했던 모든 것들이 편견에 기초한 해석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비참한 패배감을 불러 일으킨다. 뜻을 알아주지 못했으니 이 모든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도 든다. 증오에 눈이 먼 것은 나였고, 몰이해한 것도 나였으며, 부도덕한 침탈자 또한 나였다.

3.
일 년에 한번쯤 K는 정곡을 제대로 찌르는 촌철살인의 경구를 내뱉는데 오늘 그랬다. 새겨 두어 나쁘지 않을 말이기에 이렇게 기록해 둔다. 서투르게 변명을 하자면 요즘의 나는 새로운 추억을 써나가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지금 써내려가는 추억의 가치가 과거의 내가 누렸던 행복감에 뒤쳐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조로운 일상과 걱정 속에도 추억은 쌓이는 법이다. 무엇보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또래 사내들의 우정은 어린 학창 시절과는 또 다르다. 거짓 우정과 진실된 우정을 가르는기준이 상대의 행복에 얼마나 관대할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고 한다면 대답은 어렵지 않다. 아니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난 설령 바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것을 믿을 준비가 되어있으니 말이다.

4.
복학 뒤에 학교에서 새로 발견한 물건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정수기다. 정수기의 한편에는 음수용 버튼이 있는데 사실 좀처럼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주 가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부지불식간에 <위대한 유산>에서 보았던 기네스 펠트로의 모습이 떠오른다. 녹색의 의상이 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그 우아함을 현실의 누추함을 비교하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터진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마에 살짝 손을 올리고 슬며시 웃으며 이것은 아니야 하고 읊조리는 나에게 맞장구 쳐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디킨즈의 <위대한 유산> 대신 임창정 주연의 <위대한 유산>을 떠올리는 친구들 틈에서 때로 삶은 잠시동안 외로워진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