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미스 해전

<살라미스 해전>을 요약하는 가장 좋은 말은 현대판 <역사>라는 표현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의 근저에 담긴 맥락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현대인에게 딱 맞는 서술 방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투키디데스의 스타일로 재구성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헤로도토스의 스타일이 산만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두리뭉실한 이야기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칼날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라면 <살라미스 해전>의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숨긴 칼날’이 없다.

사실 친구들에게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권하며 난 암묵적으로 왜 아테네인들이 위대해졌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 볼 것을 권한다. 단호한 결단력과 숭고한 희생. 희대의 책략가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끌어낸 위대한 과업 앞에서 목을 타고 뒷머리로 치달리는 기이한 통증 덩어리를 느껴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도 <역사>가 읽기 쉬운 책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말하지 않는다. 현대인의 기준으로 역사는 핵심을 찌르는 간결한 스타일의 저술이라기 보다는 나이에 늘어진 노인의 곰방대같은 저술이기 때문이다.

반면 <살라미스 해전>은 제2차 페르시아 전쟁에, 그것도 해전에만 집중한다. 테르모필레조차 독립된 한 장이 되지 못한다. 그 어떤 책에서보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까칠하면서도 살아있는 생생한 인물로 승화된다. 플루타크는 물론이고 헤로도토스가 그려낸 테미스토클레스마저도 다소 이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책략에 능하며 승리를 위해서는 물불을 안가리는 민주정 아네테가 길러낸 우등생 을 뛰어난 필치로 되살려 내고 있다.

게다가 <살라미스 해전>은 정치적으로도 공정하다. 페르시아의 침입에 맞서 자유를 위해 그토록 커다란 희생을 치룬 아테네인들이 어떻게 똑같은 방법으로 압제의 제국을 세웠는가라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연중에 펠로폰네소스 방벽으로 후퇴와 피레우스의 외벽건설 문제를 다룸으로써 50년 후에 벌어질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또 통합과 거리가 먼 각 폴리스들의 경쟁 관계와 역사의 과거와 미래를 간결한 서술로 정리하는 덤까지 얹어주고 있다.

만약 평생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만큼은 읽기를 권한다. <플루타크 영웅전>에 소개된 동시대 인물들의 혼란스런 행적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최선의 대안이다. 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으며 지촐하고, 비겁하며, 막되먹은 아테네인들에게 실망한 사람들에게도 권유할 만하다. 하지만 최초의 세계대전이란 문법으로 ‘살라미스’를 오늘날의 분쟁의 프레임워크로 삼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권유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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