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gold

예술과는 거리가 먼 글을 쓰는 일반 작가들에게는- 특히나 저널리즘에 종사한 이력을 지닌 작가들에게는-지워지지 않는 특유의 스타일이 있는 것 같다. 이들을 특징짓는 고유의 지문은 결론 혹은 글을 마무리 하는 방식이 전형적이고, 글 속에서 시선의 이동 방향이 항상 똑같다는 점이다. 조금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사람들이 쓴 글을 대개 두 권 정도만 읽어보면 세 권째부터는 결론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마치 범인을 알고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마음에 둔 작가는 계속 읽게 되고야 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고전의 반열에 오를 일도 만무하거니와 고작해야 괴팍한 취미의 소유자들에게나 환영받을 주제를 가지고 끈질기게 글을 쓰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라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앞서는 것이다. 사실 내게 있어 가이스 밀턴은 그런 작가들 가운데 한 명이다.

‘화이트 골드’는 알제와 모로코 일대에서 영여의 몸이 되어버린 백인 노예들의 이야기다. 사실 처음 화이트 골드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난 아라비안 나이트를 생각했고, 이슬람 세계에서 비싼 값에 거래되던 트라키아나 흑해 연안의 슬라브인 백인 노예들을 상상했다. 기독교도들의 노예화를 금지한 교황청의 포고령에 대항해 흑해 연안의 소년 소녀들을 납치해 카이로에 넘기던 베네치아 상인들과 결국 백인 노예들로 편성된 군대 지휘관으로써 서부 이슬람 세계를 호령했던 맘루크들의 일대기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가일스 밀턴의 스타일에는 변화가 없었다. 흥미로운 변주를 택하는 대신 그는 영국인다운 주제를 끄집어 내었다. 그가 고른 주제는 절대 왕정 시대에 유럽의 열강들을 능숙하게 구워 삶는 재주를 부렸고, 서유럽을 기원으로 하는 동화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부를 지닌 사람으로 등장하는 모로코 황제와 그의 불쌍한 백인 노예들이었다.

사실 서구화라는 개념을 주입받고, 제국주의와 식민통치시대를 겪은 바 있는 우리에게 모로코 황제와 살레의 해적들의 활약상은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다. 레판토 해전에서 스페인-베네치아 연합함대는 오스만 투르크의 함대에게 절반의 승리를 거두었지만 17~18세기 내내 지중해의 지배자는 술탄으로부터 반독립상태를 허락 받았던 알제의 해적들이었고, 세우타 남쪽 어귀를 장악한 채 대서양의 해상권을 움켜 잡았던 것은 살레의 해적들이었다.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해상권을 일전을 벌였다고 하지만 막 독립 전쟁을 끝낸 미국이 첫번째 대외 원정으로 살레의 해적들을 박살내고 빈회의 이후 영국함대가 알제를 점령하기 전까지 대서양 항로의 맥문을 틀여 잡고 있었던 주인공은 바로 이들었다.

더욱이 스튜어트 시대의 궁정야사에서 절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무어인 대사가 바로 이들이고-그렇다. 헨리에타의 궁전에 초대된 무어인 대사는 희극의 소재가 되었다- 세네갈의 노예 해안 바로 위에서 백인 노예들로 거대한 도시를 세운 것도 이들이다. 해상력을 새로운 지배 패러다임으로 삼은 19세기의 영국이 그들의 해군력을 정당화하는 표준 역사 텍스트를 쓰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존재는 잊혀졌지만 야만과 부를 상징하는 모로코 황제의 그림자는 여전히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만큼은 뚜렷한 하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가일스 밀턴은 조금은 교묘한 방법으로 그가 다룬 주제를 통해 뚜렷이 들어나는 진실들을 비켜갔다. 하지만 이런 교묘한 방법에도 불구하고 행간 속에는 해군 예찬론자들이 펼치는 지루한 거짓말이 한톨도 담겨져 있지 않다. 사실 이번 이야기는 그가 쓴 일련의 책들 가운데 딱 중앙값이다. 허풍쟁이 맨드빌경의 여행을 따라 나섰던 경력의 소유자라면 그보다 더 희미한 모로코 황제와 그의 불쌍한 노예들을 그림자들이 실체로 들어나는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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