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평평하다

<세계는 평평하다>와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의 합본은 더 이상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 없는 모양이라고 말하며 절친한 지기인 wc군은 책을 집어 들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한번쯤 읽어보라는 이야기를 하던 나였는데 막상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려는 찰나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괜찮은 전반부를 가진 책이지만 이 책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바로 후반부의 문제점이다.

사실 이 책은 ‘친디아’를 다룬 다른 책들에 비해 한층 인상적인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세계적인 은행들이 국내에서 무슨 배짱으로 박봉을 강요하는지 깨닫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시점에서 이루어지는 전략적 아웃소싱의 실태가 명확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프리드먼이 꼽은 평평화 동력 열 가지는 꽤나 쓸만한 주제였다. 다시 말하자면 향후 2년 정도 유용하지는 않지만 다소 심각한 대화를 나눌 때 사용할 수 있는 사례들의 리퍼런스로는 최고의 책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 책의 1/3은 매우 유용하고 1/3은 그런대로 읽을 만한 수준이며 나머지 1/3은 동어 반복에 불과한 베낌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프리드먼 자신이 학문적 훈련을 받은 전문 학자가 아닌 기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다. 게다가 이 책은 사례 중심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통계 자료가 등장하지 않는다. 사례를 일반화 시키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실들이 필요한데 이 책에는 단 한 줄도 논증이 필요 없는 사실이 실려 있지 않다. 결국 이슈를 중심으로 화려한 언변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더구나 그 언변 속에서 꽤나 견실한 밑그림을 그려낼 수 있지만 딱 거기까지다. 하나의 원칙과 이론으로써 세계가 평평한지는 이슈화 되었을 뿐 아직 완벽하게 검증된 것은 아니다.

다음은 이 책의 동어 반복에 불과한 후반부가 지니는 단조로움이다. 사실 대단한 두께를 자랑하는 이 책을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은 독자들에게 그의 주장은 지겨운 수준의 재탕일 뿐이다. 정론도 계속 들으면 지겨운 법이다. 문제점은 누구나 알고 있으며 해결책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은 구체적인 해결책을 진행시킬 역량과 프로세싱 그리고 추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희생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문제이다. 하지만 그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두리뭉실한 정론으로 대답을 회피한다. 중요한 것은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바른 말보다 중요한 것은 바른 말을 실행할 수 있는 용기이고 그런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이 책은 세계화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세계화는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다. 그 어떤 논의보다 빠른 속도로 진짜 세상은 변했다. 서점과 도서관을 점령하고 있는 수많은 세계화와 반세계화를 논한 책을 대부분은 이미 현실에 뒤쳐진 낡은 오류 투성이 종이 뭉치들이 되어 버렸다. 논란은 끝없이 반복되지만 아직도 정답은 미래에 있다. 설명은 진짜 세계를 절대 따라 잡을 수 없으며 충분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설명을 이용하는 가장 유용한 태도는 설명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놓아두는 것 뿐이다. 설명을 내재화하고 이론화하며 하나의 신념으로 삼는 것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위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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