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펜스의 강희제 vs 이치사다의 옹정제

명 청대 역사에 대한 나의 애정은 레이 황의 ’1587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에서 비롯된 일 같다. 애정 반 관심 반으로 읽기 시작한 책들이 책장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시간에 대한 이해 역시 늘어난 것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지금까지도 피상적인 이해의 범주에 머무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어디까지나 지엽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들은 이 시대에 대한 내 호기심이 아직 마르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마르지 않을 것이란 사실 하나 뿐이다.

조너선 스펜스의 <강희제>와 미아자키 이치사다의 <옹정체>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이런 서두를 쓰는 이유는 이런 마르지 않는

호기심과 진한 애정이야 말로 이 책들에 관한 제대로 된 표현이기 때문이다. 연구 대상에서 말 없는 친구로 발전해 버린 황제와 그들의 유대 관계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설명은 여기까지가 전부다. 유별나다면 유별나지만 부럽다면 부러운 이들의 관계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두 권의 책은 청조의 네번째 황제였던 강희제와 다섯반 째 황제인 옹정제를 다루고 있다. 비슷하다면 비슷한 방식이고, 다른다면 꽤나 뚜렷한 차이가 나는 서술 방법을 택하고 있는데 이치사다쪽이 통상적이라면 스펜스의 쪽은 조금 기교가 많이 들어간 편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나쁘지 않다. 각각의 서술은 그들이 지닌 애정의 방향과 그들 자신의 솔직함, 연구 대상인 황제들의 성격을 반영한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서로 다른 서술 방식을 구사하고 있지만 이야기가 전개 되어나가는 키워드는 매우 유사하다.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서 살아간 두 명의 학자와 결코 따뜻한 부자 사이는 아니었을 두 명의 황제가 벌이는 앙상블은 멋지기까지 하다.

<강희제>의 경우에는 매우 평이하고 쉬운 서술로 더욱이 강희제 자신이 직접 말하는 방식의 서술로 인해 입문 교양서의 범주에 속할 정도로 접근성이 좋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책은 스펜스만큼 강희제에 대한 애정이 흘러 넘칠 때에나 참다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세부 사항의 과감한 생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이런 생략을 채워넣는 능력 여하에 따라 이해의 질이 달라진다. 가령 강희제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간략하게 넘어가고 있는 서술 속에서 한 시대의 낱말 맞추기를 즐기는 여유를 부릴 수 있겠지만 청대의 역사에 깜깜한 사람에게 이 책은 조금은 공간이 넓게 벌어진 산만한 책으로 다가설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한 시대에 대한 호기심을 불 지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이 한 권으로 강희제를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청대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으로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반면 이치사다의 <옹정제>는 옹정제가 남긴 주비유지라는 황제의 비밀 서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펴나가고 있다. 옹정제에 얽힌 수많은 수수께끼같은 야사의 영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고 황제라는 통치 제도와 황제라는 한 인간에 대한 동시 접근이 이 책의 묘미다. 하지만 이 책은 명 청대의 황제가 아니 중국의 모든 황제가 지녔던 권력의 한계에 대한 공감 없이는 읽기 힘들다. 아니 중국의 전반적인 통치 제도가 어떻게 구성되고 움직였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다면 이 책의 이해는 피상적인 수준에 멈추고 만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레이 황이 <1587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사실 <강희제>와 <옹정제>가운데 어느 쪽에 더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한다면 <옹정제>쪽에 마음이 기운다. 스펜스가 지닌 강희제에 대한 애정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내가 이치사다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비슷한 시선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가장 유명한 서구의 중국 학자보다도 이치사다에게 더 큰 호감이 가는 것은 그가 동양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나라’라는 개념에 눈을 감지 않아서가 아니다. 스펜스가 진지함이라고 믿고 있는 것보다 이치사다가 믿고 있는 진지함이 내 마음 속에 더 큰 공명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2 thoughts on “스펜스의 강희제 vs 이치사다의 옹정제”

  1. 안녕하세요? 그간 리더기로만 읽고 있었는데 말씀하신 두 권의 책에 대해 얼마 전에 저 역시 감상문을 쓴 적이 있어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슬슬 한 번쯤 인사를 드리고 싶기도 했구요. ^^

    저 역시 이치사다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편입니다. 학술적인 가치나 구성력, 무게감은 스펜스 쪽이 높다고 봅니다만, 이치사다의 솔직하고 담백한 글이나 동양인으로서 갖는 일인군주에 대한 이해 등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고나 할까요. 좀 더 공감폭이 컸어요(그래서 친구에게 준다고 말한 걸 조금 후회중이죠;).

    레이 황은 사놓기만 하고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읽을 때가 된 건지 요즘 자꾸 귓가에 눈가에 닿네요. 마침 출간을 욕심냈던 작가이기도 하고요. 여기에서도 좋은 평을 읽었으니 조만간 읽지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2. 안녕하세요. 사실 저도 리더기로 구독하고 있었답니다. 한 번쯤 인사를 드려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가 한 발 늦은 것 같군요. ^^

    서구가 바라보는 동양의 군주정은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이나 모로코의 황제같은 무소불위의 절대군주정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동양의 역사란 어쩌면 통치 엘리트들이 수없이 시도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완벽한 지배’에 관한 실패 기록일지도 모르는 데 말이예요.

    이치사다의 경우 지배의 매커니즘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이해하고, 거기에 더해 그 한계를 깨기위해 분투했던 황제의 마음에 접근하는 과정이 매우 독특했던 것 같아요.

    레이 황의 경우 그가 도달한 마지막 결론 때문에 온당하지 못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대가 낳은 관념적 문제를 차제하고 역사 본연으로 돌아간다면 레이 황이야말로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스승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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