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reversible

가끔은 만족감 대신 한숨만 나오는 날들도 있다. 오늘이 그랬다. 아니 후문에서 크리스피 도넛 한 상자를 선물 받기 전까지 그런 하루였던 것 같다. 사실 비 온 뒤 맑은 공기는 내가 좋아하는 차가운 바람을 몰고 왔고, 평소보다 삼십 분쯤 일찍 나와 폴 크루그먼의 <대폭로>를 읽던 8시 반부터 9시까지도 괜찮았다. OM 수업은 흥미진진했고 브런치를 먹기 전까지 레포트도 반이나 썼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나도 모르게 잔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잔소리를 하고 있는 나에게 스스로 기분이 나빠졌다. 공부하고 있던 파트는 고통스런 난이도를 자랑했고 당황스런 마음에 머리칼을 매만지다 보니 테이블에 습기를 머금은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빠져 있었다.

도서관을 나와 라운지에 가보니 지기 녀석은 某와 같은 의뭉스런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떤 처자가 상체를 30도쯤 굽힌 채 무릎 걸음으로 카우치에 앉아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강조된 허리와 엉덩이 곡선을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부르디외의 문장이 생각나면서 스스로의 염치 없음이 부끄럽고 무안해졌다. 부르디외 양반이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눈이 돌아갔을 거라고 변명해 보았지만 오래 생각해 보지 않아도 씨도 안 먹힐 변명이다. 무안함을 가시 돋친 날카로운 말들을 친구들에게 풀어냄으로써 풀었다. 그래서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내 부당한 처사에 대한 반발심이 마음 한 구석에서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5시에 시작된 마지막 수업도 다르지 않았다. 사례 발표를 맡은 학생은 return과 BEP가 왜 존재하는지 생각조차 안 해봤음이 틀림 없다. 발표가 끝난 뒤 선생님은 나를 민망할 만큼 빤히 바라보며 경영학과 학생 중에 제조업체의 평균 이익률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 오늘도 시작된 경영학과 물 먹이기의 시작이었다. 심술이 난 김에 순진하며 한편으로는 어리숙한 표정을 지으며 매출경상이익률과 매출순이익률, 매출영업이익률과 세전이익률, 세후이익률 가운데 어떤 것을 물으시는 것이냐고 친절하게 되받아 쳤다. 자본주의를 ‘절대악’으로 규정한 학풍이 여전히 성행하는 서쪽 강의실에서 난 뿔 달린 모세 같은 존재다.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역시 편치 앉았다. Mr. P의 PM 지명 카드는 체스테이블에서 상대가 외통수를 부르기 위한 최소 승리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50회의 반복수로 draw시키기는 것과 똑같았다. 정략적으로는 옳은 결정이지만 다른 어떤 이유보다 f라는 이유가 강조되며 테이블에 올려진 피스를 바라보는 마음은 편치 않았다. 친구들은 권위주의의 해체이고 민주주의의 발전이라고 말했다. 투키디데스의 문장이 생각났다. 이것은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 제국을 민주주의의 이상이라 부르는 것과 다름 없다. 그리고는 권위주의가 없어진 것은 옳은 일이지만 권위 자체가 없어진 시대가 된 것 같다고 굳건한 친구들의 보방式 요새를 공략해 갔다. 결국 식사가 끝날 때쯤에는 지록위마의 궤변을 늘어 놓고 있었지만 가끔은 나조차 내가 옳은 것인지 자신이 없다.

중앙도서관에서 후문으로 향하는 어두운 길을 걸으며 내일부터는 완화된 묵언계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루에 백 문장. 다음주에는 하루에 오십 문장… 그때 마주 지나가던 이가 부르는 내 이름이 이어피스를 타고 귓가에 흘러 들어왔다. 개강 이후 들은 말 가운데 가장 따뜻하고 호의를 듬뿍 담은 어조였다. 친절한 목소리에 까닭 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혹자는 크리스피 도넛 한 상자를 건 낸 그 손길이 기억의 왜곡을 가져왔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난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기억력도 나쁘지 않다. 여태 들어본 녀석의 목소리 가운데 가장 친절하고 편안했다. 원래 저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는가 한참 동안 기억을 찾아 헤맬 정도로…

지금은 진한 커피를 마시며 도넛을 입에 베어 문 채 속이 쓰릴 정도로 단 맛을 음미하며 부끄러운 하루를 기록하고 있다. 스물 여섯의 봄은 길이란 결국 혼자 걸어갈 수 밖에 없는 고독한 여로란 사실을 매일 깨닫게 만든다. 하지만 가끔은 그 길의 한가운데 친절한 목소리와 크리스피 크림 한 상자가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래서 아직 삶은 살아갈 만한 것이고 길은 걸을 만한 것이 아닌가 싶다. 도넛 한 상자 덕분에 지난 열흘 동안 나를 괴롭히던 ‘운 없음’의 순환 고리가 끊어진 것 같아 기쁘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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