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1.
모처럼 늦잠을 자보려고 굳은 마음을 먹었으나 강아지들이 노는 소리에 깨버렸다. 뉴스를 본다. 우유를 한 잔 마신다. 밀린 장서인을 찍는다. 강아지들을 괴롭혀 본다 부산을 떨지만 아직 8시도 되지 못했다.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찬 물에 세수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보지만 쓸 거리가 별로 없다. 캠퍼스를 걷는 동안에는 그렇게 쓸 것이 많았는데 평화로운 시골에서의 아침은 너무 차고 맑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2.
기차 안에서 꽃놀이를 가시는 일단의 할머님들 옆에 앉게 되었다. 새벽부터 길을 떠난 터라 허기진 배를 채우는 먹거리를 잔뜩 얻을 수 있었지만 엄청난 목소리의 향연이 두 시간동안 지속되었다. 기차 여행의 설레임은 열에 한 번쯤 옆자리에 앉게 되는 젊은 처자와의 짧은 대화라는 지인들의 요지에 따르면 실패한 여행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여행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고작 20분 정도밖에 타지 않은 환승 기차에서 깨닫게 되었다. 구두를 벗고 아침부터 맥주를 홀짝이며 육포를 뜯는 중년 남자의 옆자리만큼 괴로운것이 있을까? 스포츠 신문을 읽으며 낄낄거리며 웃는 중년의 초상만큼 인정하기 힘든 것은 없다. 내가 유별난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먼 훗날 스포츠 신문을 읽으며 낄낄거리는 중년이 된 나를 상상하는 일조차 참기 어렵다.

3.
지난 밤에는 책장과 피아노, 책상만 덩그란히 놓여 있는 방에 형제들이 모여 ‘스윙걸즈’를 보았다. 재미 없더라는 평가와 달리 끝까지 유쾌한 기분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세련된 우아함은 없어도 그냥 즐거운 영화가 있는 법이다. 우리 영화가 식상한 소재가 가져다 주는 매너리즘에 젖어 있다면 그들의 소재 발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울한 이야기보다는 낙관적인이야기를 좋아한다. 힘든 세상에서 영화마저 무게와 폼을 잡고 메세지 전달에 치중한다면 어디에서나 잠시 웃어 볼까?

4.
임플란트 매식이 모두 끝났다. 친구들은 인체의 금속 비율을 논하며 놀려대고, 씹는 맛이 예전같지 않다는 사실에 조금은 우울해 하곤하지만 게다가 가끔씩은 임플란트를 하고 하는 키스는 어떤 기분일까하는 망상을 30초쯤 하며 우울함에 기괴함을 더하기도 하지만 홀가분한 마음이 이 모든 것을 앞선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바람 끝은 차나 볕은 깊게 들어온다. 론도와 함께하는 평화로운아침이라!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10 thoughts on “주말!”

    1. 네. 시골에 있는 집 마당에서 키우는 강아지예요. 생김새는 귀여운데 어딘지 free style이라 집에서는 구박덩어리죠.

  1. 구박하지 말고 나 주면 안돼? 프리스타일도 받아줄수 있다규~~

  2. 복남이 가출했었다. 가출이 아니라 유괴가 맞나?
    자세한 사연은 내려오면 이야기 해줄께 일명 <박복남 가출사건>ㅋㅋ

    1. 이런 그래도 찾긴 한 모양이네. 너무 가벼워서 꼬맹이들도 쉽게 유괴할 수 있으니 말이야. 황사도 끝나가니까 어서 날 잡아서 놀러 오라구.

      그런데 선생님! ‘ㅋㅋ’가 뭐요!

  3. ㅋㅋ가 뭐 어때서~
    오늘 복남이 또 가출했었다.
    복남이 이름 부르며 동네 한바퀴 돌았더니 내 뒤로 아이들 한 다스가 따라오더라.
    결국 아이들이 찾아줬다. 완전 피리부는 사나이 됐다.

    1. 그 녀석의 가출 인생도 이제 종을 쳤구먼.
      그런데 ‘피리부는 사나이’란 구절을 읽고 배가 아플 정도로 한참 웃었어.
      뭐 시골 학교 전교생 42명짜리 학교 생활이 다 그런 것 아니겠어?
      참 올해 생일 선물은 뭘로 해줄까? 시골에서는 예쁜 머리핀도 필요없을테고
      비오는 날 신을 장화가 제격인데…

  4. 책장, 부럽습니다. ㅠ.ㅠ
    (고개를 돌려 작고도 지저분한 제 책장을 보고 절망했어요…)

    그러고 보니, 앗! 스킨 바꾸셨군요. 먼젓번 스킨이 워낙 인상적이고 어울린다는 느낌이어서, 깔끔하고 시원한데도 조금은 낯선 기분이 들어요.

    1. 이번에 시골집으로 이사하면서 맞춘 책장이예요. 처음에 맞춤 주문 했다고 듣었을 때에는 피프스문고에 사용되는 책장이라던지, 와이즈너 도서관의 특별실에나 있는 아름답고 단단한 책장을 상상했는데 막상 보니 매우 단조로운 책장이더라구요. 그래도 이사짐의 반을 차지하는 책들을 무리 없이 먹어 치운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답니다.

      사실 저도 예전 스킨을 더 좋아해요. 하지만 정식버전에서 그 스킨을 쓰려면 치환자를 손볼 것이 너무 많아서 여름 방학에나 바꿀 생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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