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an uncertain world(글로벌 경제의 위기와 미국)

루빈의 자서전에 대한 리뷰를 쓰는 데 왜 지지부진 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골드만 삭스의 전설가운데 한 명이자 클린턴 행정부의 재무장관이었으며 시티그룹의 넘버3였던 사람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끝나지 않은 논쟁에 기름을 뿌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가능하면 다루고 싶지 않은 소재이다. 이 책을 읽으며 사람들은 학문으로써 경제학이 논증한 것들과 현실 세계의 한 기둥으로써 경제가 작동하는 방법, 그리고 정치와 의사 결정이라는 융합하기 힘든 요소들을 골고루 생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에 의하면 미국이 안고 있는 재정적자의 규모는 경제 전체의 크기에 비하자면 예상외로 작아서 재정적자가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분석하기에는 어렵다고 한다. 사실 가장 단순한 거시경제학의 공식에 의하면 C.P. G는 Y의 증가함수로 작동한다. 따라서 재정적자의 규모가 경제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과 긍정적인 영향을 분리해 실증할 필요가 생기는데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학자들이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유의미하다면 큰 영향일 수 있으나 현재로서 실증하는 것은 불가능한 정책상의 다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학계는 부시 집권 이후 쌍둥이 적자가 지속되면서 점차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듯싶다)

하지만 루빈은 이 문제에서 아카데믹한 주장을 설파하기 보다는 경험적인 주장에 무게를 둔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부의 재정적자는 금리의 표준 지표인 TB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적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채무 규모가 증가할 수록 채권 수요자들은 더 높은 리스크 프리미엄을 요구하게 된다. TB의 이자율 인상은 경제의 전체적인 금리에 영향을 미치고 C.P. r은 I의 감소함수 이므로 결국 r은 Y의 감소함수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사실 내 전공의 특성상 이 부분은 루빈의 의견에 더 큰 설득력을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재정 적자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는 어떤 증거도 없다라는 교과서적인 대답보다 채무의 증가는 국채의 신인도를 떨어트려 투자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 조금 더 이해하기 쉽다.

게다가 그의 의견은 공화당 행정부의 집권 이후 놀랄 만큼 짧은 시간 만에 선회한 각종 지표들에 의해 충분히 뒷받침된다. 비록 그가 현재의 행정부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감세 정책과 재정 적자, 경상 수지 적자 등 일련의 문제들이 FRB의 경기 통제력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는 칼럼니스트들의 걱정은 점차 현실화 되어가는 추세다. 결국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5년 후의 학자들은 오닐의 무능함과 루빈의 유능함을 비교하며 경제학의 살아 있는 사례로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것은 비단 쌍둥이 적자에 관한 것들 만이 아니다. 이 책은 상당 부분을 지난 세기 말에 전지구적 금융 재앙이 되었을지 모를 사건들에 할애하고 있다. 멕시코의 금융 위기가 등장하고 우리 나라의 1997년 위기가 등장하며 인도네시아 사태와 러시아의 디폴트 선언이 등장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나는 막 대학에 들어 왔을 때 90년대 초반에 다가올 멕시코 위기를 진단한 크루그먼의 글을 읽고 매우 놀란 적이 있다. 요지는 지금 당신들은 당신들이 실제로 한 것보다 과도한 성과를 지급받고 있는데 이것은 현재의 것이라기 보다는 미래의 것까지 앞당겨 받은 것이나 진배 없다. 따라서 투자가들이 정확한 성과를 알게 된 순간부터 지속적으로 평가절하 압력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외환 시장의 붕괴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주장이었다. 사태는 그가 예언한 대로 흘러갔고 이 책에서 사용된 루빈의 논조와 해결책 역시 크루그먼의 주장이 지닌 이론적 배경과 유사하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그의 자서전을 읽고 있노라니 몇 가지 마음 아픈 문장이 들어 왔다. 한국의 외환 위기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이 미진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과 G7의 재무장관들과의 긴급 전화 통화, 그리고 결국 미국은 아무런 재정적 부담 없이 한국의 위기를 진화했으며 상환을 연기한 미국의 시중은행들은 두둑한 이자로 보답 받았다는 마무리였다. 아니 그보다 더 심란했던 것은 50베이스 포인트 때문에 구제금융 이후 첫 번째 대출 건을 포기한 우리 나라 재무장관의 어리석음에 대한 에피소드였다.

사실 합리성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판단은 매우 적절하다. 시장의 신뢰라는 가격이 매겨져 있지는 않으나 어떤 금융 자산보다 더 소중한 자산에 대한 그의 접근 방법이야말로 우리의 정책당국에서 꼭 배워둘 필요가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입맛이 쓴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런 재정적 부담 없이도 살 수 있는 그 신뢰를 얻지 못한 정책 당국과 기업들 덕분에 수많은 고통을 겪고 삶 자체가 변해버린 수많은 한국인으로서는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것을 미국의 금융패권주의로 단정짓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그들 역시 범 지구적 규모의 자본 시장에서 바라보자면 정보 비대칭이라는 어둠 속을 미약한 등불 하나만 가진 목동에 의존해 걸어가는 양떼와 다름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책은 원제만큼 지난 세기의 마지막 십 년 이후 오늘날까지의 세계를 잘 묘사하는 문구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무엇이 정의냐는 문제에서 벗어나 ‘an uncertain world’ 에서 현명하게 살아 남는 방법에 관해 보다 진지해질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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