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 지다

오에 겐자부로의 강연이 있을 거라는 공고를 보았다. 시간만 되면 가보고 싶다는 나에게 친구가 그가 어떤 소설을 썼는지 묻는다. 머리 속의 사전은 단편 소설집인 <브라질풍의 포르투칼어>를 기억해 내지만 이내 잘 모르겠다 좀 생각해 봐야지 하고 대답한다. 사실 오에 겐자부로에 관하여 이런 반응이 나올 정도면 내가 지닌 일본 작가들에 대한 편견은 ‘개념 탑재’라는 괴상한 조어가 부족할 지경이다. 하지만 난 아직 소세키 이후 그들이 이룩한 발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결국 미팅이나 소개팅에서 작업이라 불리는 것을 위한 용도로, 혹은 순수한 호기심에서 읽는 경우는 많지만 읽은 내색을 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꽤 재미난 것들과 조우하는 즐거움을 누릴 때도 있다. 오에 겐자부로를 생각하다가 생각은 얼마 전 리더기로 리뷰를 하나 읽은 아사다 지로로 건너뛰었고 그 파편은 2층 일문서가의 맨왼쪽 5단에 놓여 있는 <칼에 지다>에서 멈추었다. <바람의 검심>이라는 만화가 유행이던 십대를 보낸 나에게 교토를 배경으로 활동하던 신센구미를 다룬 그의 소설은 영화로 먼저 다가왔고 영화의 엉성함에 화가 난 결국 지로의 원작을 집어들 수 밖에 없었던 사건의 인과 관계가 머리 속에 펼쳐졌다. 그 어설픈 재미라니!

<칼에 지다>의 배경은 메이지 유신이 이전인 막부 말기이다. 말단의 한 사무라이가 주인공인 이 소설에서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이타이인부치의 하급 무사에게 충성을 받칠 주군은 가족’이란 부분이다. 사실 그 소설을 읽을 즈음의 나는 이미 메이지 유신에서 청일/ 러일 전쟁으로 승리로 이어지는 일본의 급속한 발전이 막부 시대에 비해 비약적으로 늘어난 생산성과 생산성 향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조리한 현실 세계의 배고픔을 인내하던 사람들 때문이라는 주장에 동조하고 있었기에 이타이인부치라는 말이 더 깊게 다가왔던 것 같다.

사실 아사다 지로의 소설은 어떤 의미에서는 약간은 조잡하다. 소재의 발굴이나 범인이 상상해 낼 수 없는 상상력이 그에게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가들에 비하면 촐랑거리고 스타일리스트들에 비하면 약간 싱겁다. <칼에 지다>에서도 이런 특징은 고스란히 들어난다. 하지만 <칼에 지다>에서만큼은 아사다 지로의 이런 단점들이 되려 소설의 재미를 더하는 숨은 공신이다. 부조리한 현실에 내몰린 인물을 너무 완벽하게 그려내는 것도 좋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기가 아닌 요시무라 간이치로라는 이름의 난부 사투리를 쓰는 촌스러운 무사다. 그렇기에 적당히 부족하고, 적당히 어설픈 구조와 묘사 속에서 되려 인물은 생동감을 얻는다. 사실 아무리 후한 점수를 주려 해도 아사다 지로의 재주로는 요시무라 간이치로를 기처럼 그려낼 수 없다.

결국 결론은 내 또래의 친구들에게 건네는 권유문이다. 사이토 하지메도 등장하고, 막부 말의 칼부림도 등장하는 소설이니 그냥 한번 읽어보라는. ‘그 사람은 꼭 살리고 싶었다’라는 말이 억지스럽지만 그럼에도 소설을 미워할 수 없는 것처럼 나 역시 그래 달라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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