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살인 & 모자이크 살인

부끄럽다면 부끄럽고 합리적이라면 합리적인 일지만 가끔은 나 역시 무게를 달아 책을 사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실제로 무게를 달아보는 것은 아니다. 페이지수와 각종 옵션을 토대로 페이지당 단가를 계산해 의사결정에 참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상물들이 되는 책들은 대개의 경우 소설책들이다. 사실 이 수준의 의사결정에서 책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이 시점에서 책을 사는 이유는 이야기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지 작품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테의 빛의 살인』은 전편인 『단테의 모자이크 살인』을 덤으로 주는 데다가 극히 저렴한 가격을 자랑하고 있었다. 속된 말로 하자면 제대로 된 명세서를 갖춘 소설인 셈이다. 이런 기회를 그냥 모른 척 넘어가는 것은 수집가 기질을 지닌 사람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다. 결국 서점에 쌓인 적립금으로 사는 셈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책을 집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줄리아 레오니의 책들은 일반적인 의미로써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편에 대한 혹평을 수없이 들었기에 기대수준 자체가 매우 낮게 형성되어 있던 이유에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재미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더구나 재미와 소설의 가치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추리 소설의 구성력과 플롯이 가져다 주는 재미를 논외로 하면 줄리오 레오니의 소설들은 꽤나 독특한 가치를 자랑한다. 바로 단테라는 인물상을 놀랄 만큼 호소력 있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건들의 배경을 음미해 보면 세계사적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의 전조를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의 추리와 모티브는 어설프나 인물 뒤에 작용하는 힘만큼은 거대하다.

기본적으로 이런 소설을 즐기기 위해서는 현대인이기에 알고 있는 지식과 관점을 잠시 접어 두어야 한다. 14세기 피렌체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라면 그 당시의 지식과 세계관을 거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에 접근하는 것이 옳다. 또 신곡 정도는 미리 읽어 둔 상태에서 소설을 펴는 것이 좋다. 신곡을 읽으며 느끼게 되는 시인 단테의 괴벽과 편협함, 거만함과 복수심, 그리고 어두운 정열이 이 소설에서는 꽤나 잘 형상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작가는 한 남자의 절정기에서 운명의 절정기로 어쩔 수 없이 걸음을 옮겨야 하는 단테의 삶을 시의적절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더욱이 사건의 배경으로 작동하는 힘들은 비단 한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의 세계가 안고 있던 역사적 문제이다. 줄리오 레오니는 그가 진정으로 그리고 싶었던 거대한 이야기 타래를 솜씨 있게 문장으로 뽑아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 장르의 노련한 독자라면 그의 거친 실 자락에서 곧바로 작가의 머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작가와 독자 사이의 대화가 반드시 정련되고 세련된 플롯과 문장으로 매개될 필요는 없다. 이런 점을 가만하면 적어도 에코風의 소설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잠시 동안 지친 마음을 쉴게 할 수 있는 그늘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P.S.
번역의 문제인지 작가의 문제인지 알 수는 없으나 페스트와 제4차 십자군은 이 책의 실수다. 1300년 시점에서 유럽에는 흑사병이 퍼지지 않았고 제8자 십자군이 실패한지 채 이십 년이 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마지막 십자군은 그 후 백오십 년 뒤에 결성되며 십자군 원정의 실패와 몽고의 원정으로 유럽 세계가 앓고 있던 공포감이 이 책에서는 매우 약하게 반영되어 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