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경제학

대개의 경우 나는 책을 사자마자 띠지를 버린다. 띠지 제작에 소요되는 경비가 출판사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적지 않은 금액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으나 띠지 만큼은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휴지통으로 직행이다. 사실 본질적으로 책에 둘린 띠지와 현관문에 요란하게 붙은 전단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것들은 정신을 집중하는 데 방해만 될 뿐이고, 작가와 독자 사이의 유대 관계를 어긋나게 만들 뿐이다. 혹평하자면 출판사들의 프로모션 전략처럼 무의미한 지출은 없다. 대개의 경우 편집자의 서평은 책의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문장의 나열이고 뒷배에 인쇄된 태그들은 번지수가 한참이나 틀렸다. 여기에 역자 서문이 저자의 서문보다 먼저 등장할 정도로 엉망인 출판사라면 책머리부터 불평이 늘어지기 시작한다. 덧붙여 어설픈 경력을 앞세운 얼치기 전문가인 역자와 그 역자를 능가하는 부두 경제학의 전파자인 작가가 더해진다면 신경질의 단계를 가볍게 넘어선 분노가 새록새록 가슴 속에 차오르게 된다.

사실 이 책은 오역투성이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이상한 원작인지 구분이 어렵다. 하지만 경제학이라는 용어를 함부로 남용한 것으로 보아서는 오역일 가능성이 더 높다. 저자의 논리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꼬일 만큼 꼬여 있고 합리적인 판단력이 결여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분명하고 명쾌하다. 다시 말해 미국이 대단히 잘못된 길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달러 위기를 지적하고, 미국인들의 행태를 비난한다. 하지만 이 책은 학자의 책이 아니라 저널리스트의 책이다. 저널리스트의 책에서 사실과 인과 관계에 대한 균형을 찾기란 대단히 어렵다. 다시 말해 Post hoc, ergo propter hoc이라는 학자들이 좀처럼 저지르지 않는 논리의 오류가 드러나곤 한다.

결국 대부분의 이류 저널리스트들의 책처럼 이 책 역시 종국에는 균형 감각을 상실하고 비난만을 위한 비난으로 페이지를 채워간다. 이 책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미국의 수많은 좌파 칼럼리스트들이 지난 5년 동안 이보다 훌륭한 논리와 지성의 힘으로 논의를 전개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 책에 오랫동안 NYT의 주요 서평 도서로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조금은 당혹감을 느낀다. 번역 과정에서 개인적인 오역의 실수는 있었겠지만 이 책의 서평은 정말이지 화려했기 때문이다.

최근의 서점가에는 달러화 약세에 대한 신간들이 넘쳐난다. 대부분이 저널리스트들의 시류에 영합한 책들인데 이 책들 대부분은 환율의 결정 과정에 있어서 지정학적 접근 방법을 선호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런 지정학적 접근 방법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지정학적 접근 방법이 전혀 쓸모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철 지난 중상주의와 보호무역주의의 망령이 숨쉬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구분하지 못하며 시나리오에 적합한 자료들을 토대로 스토리를 구성해 낸다. 진짜 문제는 바로 여기 있다. 일부러 그려진 설명은 필연적으로 오해를 낳게 되고 오해는 편견의 기초가 된다. 그리고 편견은 잘못된 판단을 이끈다.

『달러의 경제학』은 매우 많은 단점을 지닌 책이지만 시중에 나온 비슷한 테마의 책들 가운데에서는 그래도 가장 나은 축에 속한다. 최소한 이 책에는 불필요한 망령들이 없으며  X-file에서나 나올 법한 음모론도 등장하지 않는다. 『차명 계좌』를 읽고 UBS를 악한으로 매도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시류를 따라 흘러나는 종이두름들을 진실로 믿는 것 또한 어리석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