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1.
주말 동안 본가에 다녀왔다. 친구들은 기말 시험을 앞 둔 주말에 집에 다녀오겠다는 내 말에 기가 찬 표정을 지었지만 친구들의 놀람과 달리 종강과 시험 사이의 틈을 이용해 집에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우선 제법 긴 기차 여행 동안 꽤나 많은 양을 공부할 수 있고 서울에 가지고 있는 책보다 본가에 더 많은 참고 자료가 있으며 끼니 걱정을 하지 않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친구들의 놀람이 옳았다. 금요일 밤부터 월요일 새벽까지 60여 시간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배를 채우는 것과 차를 마시는 것, 영화를 보는 것과, 밀린 잠을 자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심지어는 낮잠까지 잤다). 결국에는 기차와 지하철에서 시험을 코 앞에 두고 벼락치기를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번에 구매한 Harrods의 사과향 홍차와 오랜 만에 먹어본 막내 누이의 머핀 덕분인지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만족감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2.
지난 금요일 저녁에는 누이의 드라마 브리핑이 있었다. 사실 텔레비전 따위는 보지 않아도 한 시간 반 동안의 브리핑이면 최근 드라마의 경향과 요점, 인물 관계 및 관람 포인트를 모두 알 수 있다. 사실 누이의 브리핑은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까닭으로 자칫 답답한 인물로 비쳐질 수 있는 동생을 위한 배려인데 언제부터 인지 몰라도 집에 갈 때마다 이어진 것은 어느 사이에 정례화 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누이의 이런 배려는 동생의 이미지 향상 대신에 복학생 친구 녀석들을 텔레비전의 마수 앞에 내던지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어쨌거나 드라마 전성기가 지났다는 누이의 말대로 주말 동안의 텔레비전은 정말 재미 없었다.   

3.
디마케팅이라는 말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마케팅 효과가 역으로 발생하는 경우를 뜻한다. 그리고 주말 동안 본 텔레비전과 상점들은 디마케팅의 살아 있는 표본이었다. 실제로 광고의 주목적은 인지도 향상을 통한 매출 확대에 목적이 있다. 결국 남들 하는 식으로 따라가는 마케팅으로는 인지도를 올릴 수 없고 되려 사람들이 축구를 보고 있는 시간만큼 구매는 줄어 들게 된다. 디마케팅의 남발로 식상한 광고가 흘러 넘치는 지금이야 말로 차별화된 광고 전략을 사용할 수 있는 최적기가 아닐까 싶은데 이놈이나 저놈이나 붉은 색을 못 둘러서 안달이다.

4.
文翰筆墨의 약자를 翰墨이라 한다. 또 文翰筆墨를 주고 받는 자리를 翰墨場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옛사람은 翰墨遊戱를 자신의 낙관으로 삼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이 꽤 마음에 든다. 최초로 본 출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되새김질 시켜준 출처는 『중국회화사삼천년』이다. 그 책에서는 翰墨에서의 翰자를 제대로 번역하지 못해 잘못된 해석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문구가 지니는 뜻마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렇게 문구를 풀어 쓰는 이유는 당분간은 블로그 작성자의 닉네임으로 기재 될 것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루바이야트를 다시 읽었는데 더 이상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조차 통하지 않는 것을 붙잡고 있기에는 아직 난 젊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