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의 자코메티

20세기를 살다간 대개의 문필가들의 얼굴은 낯설지 않다. 책날개를 통해 무지불식간에 머리 속에 각인되고 수많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친숙해졌기 때문이다. 아니 그들의 문체와 이야기를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들은 미지의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내게 있어 예술가들은 그렇지 않다. 부끄럽지만 난 지금도 별도의 설명 없이 피카소와 마티즈의 생김새를 제대로 구분해 내지 못한다. 책을 읽다가 조우하게 되는 오래된 사진 속에 서 있는 예술가들은 제대로 구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그들의 생김새와 작품을 연결시켜 볼 수 있는 안목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동양적 개념으로 말하자면 난 그들의 작품으로부터 작가의 독특한 사의를 읽어낼 재주가 없기에 얼굴을 보고도 그가 누군지 모르는 것이라고 잠시 생각해 본다. 하지만 이런 보편적인 경우에도 예외가 있으니 바로 자코메티다.

작년에 열린 브레송의 사진전에서 난 자코메티의 사진 앞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제목을 보기도 전에, 아니 그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자코메티가 어떤 생김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음에도 그 사진의 주인공이 자코메티란 사실을 바로 알았다. 꽤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이 사람은 자코메티가 아닌 다른 사람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로부터 수없이 설명을 들은 누군가를 통성명 없이도 알아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가늘고 긴 그의 인체가 떠올랐다. 그리스 조각처럼 우아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리얼리티가 넘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작품들이 그의 주름 위에 겹쳐 보였다. 정말이지 행복한 경험이었다.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브레송이 ‘보고 있는’ 자코메티를 언뜻 본 것 같았다.

어제는 정작 중요한 시험을 일주일 가량 남겨두었지만 한 학기를 끝낸 기념으로 잠시 서가에 들렸다. 방학이 시작이 되기 전에 두껍고 묵직한 책들을 빌려야 한다는 그간의 경험적 교훈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방학 동안에는 장기 대여가 되기 때문에 보통 학기 중에는 읽기 힘든 두껍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책들이 대거 대출되는데 그 중에 내가 원하는 책들이 끼여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스키니진이 매우 잘 어울리던 여학우와 마주친 황망한 눈을 감추기 위해 바라본 곳에 놓여 있던 책이 바로 『작업실의 자코메티』이다.

사실 고작 170여 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이 얇은 책을 읽는데 소요된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 하지만 난 다 읽은 책을 빌려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주문하지도 않은 책이 도착할 때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망상이 나를 사로 잡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책을 놓친다면 예술적 실체와 환영 사이의 숙제를 평생 풀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밀려 왔다. 본다는 것과 실제 하는 것. 예술가의 눈과 작품으로 형상화된 것들의 긴장감을 평생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왔다. 아니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세잔의 강력한 영향력과 본다는 것-정확하게는 표현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놓칠 것 같았다. 어떤 면에서 제임스 로드는 전문적인 예술사가들의 눈에는 풋내기 아마추어로 보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감명 깊은 예술가와 예술에 대한 위대한 초상을 그려 내었다. 개인적으로는 바사리 보다는 조금 아래지만 그에 견주기 부끄러울 정도는 아니다.

사실 이 책을 손에서 놓기 싫은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모종의 경로를 통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2000년 10월에 출간된 이 책은 나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5명이 대출을 했는데 이 책에는 두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인용을 위해 표시된 볼펜과 색연필로 필요 최소한으로 표시된 원고 기호가 바로 그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원고 기호의 주인들이 느꼈을 감상을 공유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획의 굵기와 힘. 궤적과 망설이지 않는 곧은 선을 통해 작은 손을 가진 여성으로 추정이 가능한 그녀들이 느꼈을 기분이 내게로 전염되기 시작했다. 까닭 없이 그녀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이 원고 기호들은 리포트나 논문에 인용하기 위해 기입된 것은 아니었다.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보자면 내가 빌린 책에 남겨진 흔적들은 스크랩북에 옮겨 적기 위한 사전 절차거나 에세이 風의 소품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적출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증거들이 모이면서 오래지 않아 내가 찾고 있는 흔적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얼굴조차 모르는, 대화를 나눈 적 조차 없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 사람과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스토커 기질을 지닌 나 같은 무리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기쁨이다.

언제인가 브레송의 사진과 자코메티의 조각이 함께 전시되고 있는 전시회에 대한 보도를 읽은 적이 있다. 어디에서 열린 전시회인지 언제쯤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작업실의 자코메티』을 읽고 나니 자코메티가 선택한 매체의 한계에 따른 좌절이 동반되긴 했겠지만 그들이 의외로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동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 평생 누군가를 모델로 ‘보기’ 위해 고난의 십자가 길을 걸었던 자코메티가 누군가의 모델이 되어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려니 짓궂은 농담 한 마디가 떠올랐다.
“자코메티氏. 고개를 드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요. 고개를 다시 내리세요. 아 완전히 망가졌어요. 영원히 그만 두어야 할 모양이에요”

P.S.
내가 본 자코메티의 사진은 브레송의 도록에 실려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데 아쉽게도 본가의 서재에 있다. 그래서 본가에 들릴 때까지 브레송이 찍은 다른 자코메티의 사진을 올린다. 몇 주전부터 EBS명작드라마에서 인상파화가들이라는 제목의 드라마 시리즈를 방송하기 시작했는데 이번 주말에 아마도 3회가 방송될 것이다. 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나에게는 텔레비전 수상기가 없다.

6 thoughts on “작업실의 자코메티”

  1. 자코메티의 인물이 살 것 같은 호퍼의 공간과 실존주의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아.
    참, 사진 스캔해서 보낸다.

    1. 공간을 호퍼 특유의 배경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는 것이지? 자코메티란 인물은 워낙 독특해서 오히려 호퍼의 공간에 서 있다면 고독함 대신에 이질감이 묻어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어. 사진은 잘 받았어. 아침부터 배가 고프다.

  2. 자코메티의 인물 = 자코메티의 작품 속 사람들을 말하는 거였어. 호퍼의 그림에 사람을 그려 넣는다면 자코메티가 표현한 사람들이 어울리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 존재하는 모습이 고독한 자코메티의 조각 속 사람들이랑 존재하지 않아 고독한 호퍼의 그림이랑 느낌이 비슷해서. “같은 느낌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나도 정리가 잘 안된다. 뭔 소린지?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라. 그리고 다음주엔 익군, 럭키 보이가 되어라 얍!

    1. 응. 이제야 의미가 파악이 되었어. 시선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일부 작품들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을 법도 하다. 코멘트 읽고 한참동안 머리 속에 느낌을 떠올려 봤는데 정말 두 사람이 비슷한 느낌을 자아내게 만들어서 좀 놀랐어.

      난 항상 능력이나 실력보다도 운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꽤 잔인한 법이라서 함부로 기원하면 아니 된다고. 운명의 여신과의 승부는 얼마나 자기 마음을 잘 감추냐가 아닐까 싶어. 커다란 행운을 갈구하면서도 절대 표내지 않고 깊숙하게 감춰두는 것이 포인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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