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아닌 방황

선배의 결혼 선물을 고르기 위해 인사동에 들렸다.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잠시 동안 선물을 사러 다닐 나이는 이미 지났다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지만 늘 그렇듯이 이런 일은 남들보다 조금 더 꼼꼼하고 기억력 좋은 내 몫이다. 그렇기에 마음 속에서 불거지는 신경질을 다스리는 일도 쉽다. 그냥 ‘빌어먹을 의무감’이라고 소리 없이 몇 마디를 내뱉고 나면 이내 평화로워 지는 것이다.

선물을 사고 인사동에서 대학로까지 걷는 동안 동행한 친구 같은 후배 녀석과 제법 긴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불과 몇 시간 전 방콕으로 휴가를 떠나기 전 친구가 던지고 간 말이 계속 마음을 맴돌았다. 요약하자면 ‘세상에는 될 사람과 안 될 사람이 있는데 넌 안 될 사람만 좋아한다’라는 상투적인 문장이다. 그리고는 후배의 남자 친구와 어울려 술잔을 기울였다. 4년 반 만에 친구 같은 후배가 누군가의 연인일 수 있다는 사실과 그 모습은 내가 알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다시 상투적인 표현을 남발하자면 그제서야 내가 지닌 문제가 무엇인지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고 애정을 느낄 때 판단의 전제가 되는 것은 연인으로써의 기대감이 아니었던 것 같다. 기가 찬 노릇이지만 지금껏 판단의 전제가 되었던 것은 상대에 대한 존경이었다. 그랬기에 늘 그렇게 무언가 어색하고 이상했던 것이 분명하다. 본능적으로 걸음이 쉽게 옮겨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늘 굼뜬 사람이 되었고 좀처럼 섞이지 않는 기름 같은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열 혹은 사랑스러운 말투와 다정스러움에 대한 기대감보다 올곧은 행동이나 재능, 무엇보다 삶에 대한 진지한 열정을 통해 형성되는 기대감이 애정의 기초가 된 울고 싶은 상황의 연속 혹은 중첩이 내 과거의 전부라니 세상을 헛살았다는 느낌과 함께 두 다리의 힘이 쭉 빠진다. 하지만 문제는 알았으되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답을 모르지는 않으나 지난 시간 동안 몸과 마음에 아로새겨진 것들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란 누구에게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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