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하다

평소와 다름 없는 시간에 눈을 떴으나 어딘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다. 가령 책상 위에 잔돈 몇 백원이 흘러 나와 있다던지, 책이 거꾸로 꼽혀 있다든지 하는 경우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지난 밤의 세세한 이야기가 80% 정도만 기억난다는 것이다. 버릇처럼 외우는 택시의 번호판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양껏 마시고 취해보기’란 wish list의 항목 하나를 지웠지만 이런 항목을 지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항상 뒤늦게서야 깨닫게 된다.

지난 밤에는 오랜만에 엽서를 즐겨쓰곤 했던 벤치를 둘러 보았다. 그곳에 간다는 이유만으로도 난 취할 필요가 있었고(그곳에 간다는 결심을 하자마자 바로 과음의 단계를 넘었다) 막상 그곳을 보는 순간에는 진짜로 취해 있던 것 같다. 관리를 안했는지 덤불이 지나치게 무성해 있었지만 어느 오후를 회상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까닭 없이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시간의 무상함이 나를 습격하기 전에 미친 척 춤이라도 추어야 했다.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찾아봐야 가슴 아프기만 한 것들이 분명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난 밤 같은 즐거움이라면 기꺼이 취할 수 밖에 없다. 곤피스를 점령한 노새들이 하룻밤 술로 기력을 회복했던 것처럼 매너리즘 반, 피곤이 반 섞인 기묘한 상태를 끝내기 위해서라면 취할 수 밖에 없다. 곤혹스런 동어 반복과 꼬부라진 거친 발음을 감내해준 상대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취할 수 밖에 없는 하루란 분명 존재한다.

문학이라던지 예술이라던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대신 부동산과 ‘남자들이란’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떠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 삶의 90%는 세속적인 일들에 매여 있고 10%조차 되지 못하는 잉여 시간만이 아름다운 것들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과 무관한 사람이 아름다움을 입으로 논한다는 것은 어딘지 부끄럽고 겸연쩍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나 역시 그녀처럼 수첩에 무엇인가를 다시 기록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해야할 일들과 계획으로 어수선한 지금의 수첩 대신 진짜 살아 있는 삶을 기록하는 그런 수첩으로 말이다.

P.S.
21세기 초, 나의 생필품 거래처였던 어느 마트에서 보곤 했던 자매에 대한 단상을 찾을 수 없다. 매우 또렷한 인상이었기에 어딘가에 분명 적어 놓은 것을 기억하는데 그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밤새 기억을 되집고 또 되집어 찾아낸 기억들은 여전히 모호하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는 뒷모습과 셈을 치루는 모습 등 매우 단편적인 것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장바구니를 붙잡고 한번쯤 말을 걸어보고 싶었던 상대와 전혀 다른 우연에 의해 다시 조우했다. 어째서 지난 밤에는 ‘언니 때문에 말을 못걸었어요’ 라던지, ‘뒷모습을 보니 누군지 정확하게 알겠어요’ 같은 말 대신 변죽을 울리는 말만 했을까?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조금 초췌한 얼굴로 학교에 나가니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얼마나 마셨냐는 질문에 다섯 손가락을 펴들자 이내 나무람이 시작된다. 지금 납량특집 찍냐는 힐난까지 받으며 머리를 긁적여 보지만 어느 놈 하나 곤란한 상황에서 구해줄 기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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