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만찬

 팩트 소설이라는 장르로 불리는 요즘의 소설들을 읽고 있노라면 나 자신이 이 장르의 대가가 된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지곤 한다. 수 없는 반복 끝에 소소한 인명이나 지명에까지 익숙해진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읽은 소설들의 두께가 허리 어림에 이르게 되면서 이 장르는 알면 알수록 이해하기 힘든 장르가 되고 만다. 이 장르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재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비밀의 만찬』은 최근 팩트 소설의 주공급처가 되어버린 스페인산 소설이다. 최소한 이 소설은 현대와 과거를 넘나들며 교차 편집되는 구성에서는 탈피했다는 장점을 지닌다. 배경은 일 모로에 의해 다스려지는 15세기 말의 밀라노이며 우리의 주인공은 종교재판관이자 암호분석가인 레이레 수사인데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리고 있는 「최후의 만찬」이 이단적인 상징을 담고 있다는 제보에 의해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라그라치 성당에 파견되게 된다. 이후의 일은 통속적인 팩트 소설의 장르에 의해 비밀을 만드는 자와 이를 방해하려는 자가 등장하고 종국에는 레이레 수사가 두 발 정도 늦게 수수께끼를 풀게 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한마디로 뻔한 소설인 셈이다.

하지만 비판거리는 충분하다. 첫 번째 이 책에서는 데스데 가문의 베아트리체를 카타리파에 깊게 관계된 인물로 묘사하는데 역사적 고찰에 의하면 그녀는 당시의 가장 지적인 여인으로 불리던 만토바 후작 부인 이사벨라 데스데에 대한 질투심을 지녔고 레오나르도를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을 뻐겨했으며 엄청난 재산 덕에 손쉽게 컬렉션을 구축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역사학자들이 바라보는 베아트리체는 카타리파에 귀의한 공녀가 아니라 언니에 대한 콤플렉스로 무장한 허영덩어리였던 셈이다
(시오노 할머니께는 미안하지만 이사벨라 역시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전혀 지적인 여인이 아니다. 시오노 할머니의 찬사와 다르게 만토바家의 이사벨라 컬렉션의 진품은 몇 점 되지 않는데다가 그마저도 대부분 인문학자인 가신들의 도움으로 구축되었다고 한다. 못생긴 용병대장인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나 아무런 차이가 없었던 셈이다)

게다가 저자가 무리하게 타로 덱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스포르자(혹은 비스콘티)家의 타로를 이야기에 섞여 넣으려다 보니 수수께끼의 방향을 종잡을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종교적 통일성이 없다. 아무리 카파리파의 역사가 베일에 가려 있다지만 이것은 재침례파인지 세례 요한파인지 아니면 마리아 막달리나가 중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각종 이단들의 종합선물세트가 카타리파의 이름을 등에 엎고 등장하는 꼴이다.

무엇보다 웃긴 사실은 「흰 담비를 안은 여인」으로 불리는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초상을 등장시키면서 현대의 전시회의 한 장면처럼 묘사했다는 데 있다. 뿐만 아니라 「최후의 만찬」의 모델이 된 유다와 예수의 모델이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은 오늘날 거의 반론이 제기되지 않는 구전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다른 방식으로 모델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한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추리 역시 너무 쉽다. 추리 소설의 법칙에 따라 등장하는 인물 소개만으로도 우리는 범인의 특징을 손쉽게 잡아낼 수 있다.

하지만 카파리파의 종교적 해석을 최후의 만찬에 적용시킨 구상력은 놀랄만하다고 평가해주고 싶다. 계속 제기되는 왜 「최후의 만찬」이 카파르파의 성전이나 다를 바 없는가는 『성혈과 성배』의 카파리파 부분을 참고하면 손쉽게 풀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물론 여기에는 트릭 같지 않은 트릭 하나가 있다. 바로 boustrophedon이 바로 그것이다.

2 thoughts on “비밀의 만찬”

  1. 제가 읽을 때는 ‘최후의 만찬’이었는데 고단새 제목 싹 바꿔서 새로 출간했나봐요. 출판사들 발빠르네요. 전 팩션에서 주로 다루는 그쪽 종교에 대한 지식이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어서(상식 수준에도 미치지 못 합니다;) 도대체 뭐가 뭔지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역사적 사실(이라고 역사서에 적혀 있는 것들)과 추리만 뚝 떼어서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 두 방면으로 많이 모자라더군요. 그래서 다소 실망했던 기억이 나네요.

    1. 방학이 시작된 기념으로 성수의기사단하고 같이 읽었거든요. 그것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은 느낌이긴 하지만 에쎈님의 말대로 실망스러운 등급에 속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 같아요.

      요즘의 팩션들은 어딘지 풋내기의 습작처럼 어설프고 문학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아요. 구상은 있지만 제대로 검증받지 못한 구상이고 독창적인 스토리라인이 부재하는데다가 서술 기법이 너무 단조로와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해요.

      하지만 복잡하고 골치아픈 전공/시험 서적들 사이에서 가끔은 이런 책을 읽어주면서 작가를 비웃는 재미마저 없으면 줄기차게 비만 내리는 이 여름이 너무 지루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해서요.

      참 스키피오의 꿈이 나왔다는데 제가 다음주에 출국을 하게 되어서 언제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비행기 속에서 읽거나 아니면 에쎈님의 리뷰를 기다렸다가 내년에나 읽게 될 것 같습니다. 바쁘시더라도 리뷰를 기다리는 저같은 사람을 위해서 꼭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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