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a de la Danza

지난 토요일에 본 발레 공연은 국립 쿠바 발레단의 런던 데뷰를 위한 리허설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옳을 것 같다. 정식으로 하나의 발레극을 공연한 것이 아니라 가장 유명한 발레 몇 개의 하일라이트를 짜깁기한 무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젤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호두까끼 인형과 코펠리아, 돈키호테, 백조의 호수의 Grand Pas de Deux와 솔리스트들의 Pas de Deux로 구성된 이 날 공연의 완성도가 낮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유명한 발레의 장면 장면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음은 물론이고, 표현력이나 기술이나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날 공연에서 부족한 것은 무대 디자인과 의상 디자인이었다. 한국의 화려함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국립 쿠바 발레단의 소박하다 못해 때로는 촌스럽기까지한 무대와 의상 디자인에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발레단 소속 오케스트라의 실력은 정말이지 놀랄만한 수준이었다. 물론 트럼본 독주에서 소소한 실수를 계속한 아저씨 한 분 덕분을 제외하면 말이다. 차라리 앰프를 트는 것이 나을 것 같은 한국의 오케스트라와 비교해보자면 이것은 정말 들을 만한 음악이었다. 가볍기 그지 없는 토슈즈들의 착지음과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섬세하게 어울려 만들어 내는 소리를 묘사하자면 아름답다라는 형용으로는 오히려 부족한 감이 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소리를 느낄 틈이 없다. 완벽한 아름다움에는 강력한 흡입력이라는 그림자가 따라 붙기 때문이다.

발레리나들의 신체 조건을 비교해보자면 한국의 경우가 더 크고, 날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의 주연급 발레리나들을 보게 되면 그들의 몸짓에서 대단한 자신감이 느껴지곤 했는데 국립 쿠바 발레단의 경우에는 키는 작지만 한국의 발레리나에 비해 탄력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국의 발레리나를 볼 때마다 느끼곤 했던 자신감 대신에 호소력있는 표현력을의 후광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의 발레리나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보다는 고고한 존재로 보여졌다면 이들은 포옹하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무엇보다 긴 다리와 손짓, 탄력적인 허리가 만들어내는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는 움직임은 경탄스러웠다.

발레리노의 경우 신체 조건이나 기술이나 한국의 발레리노들이 이들에 비해 빠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근력의 차이만큼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한국의 발레리노들이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움직임이 이들에게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솔리스트의 실력이 주연급 발레리나들 못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코다에서 보여주는 움직임을 통해 보건데 국립 쿠바 발레단단의 실력은 평균적으로 고를 것이 분명하다. 발레리나/노의 층이 두껍다는 점이야말로 이들의 정식 데뷰 무대의 성공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볼쇼이 발레단이 그 명성을 잃어가는 지금. 그들의 명성을 이어갈만한 연습량을 보유한 발레단은 아마 여기뿐일 것이다.

끝으로 발레 관객에 대해 촌평하자면 영국에서는 무엇을 하던 경제력과 클래스라는 단어가 머리 속을 맴돌게 된다. 내가 앉은 서클은 그다지 비싸지 않은 자리였기 때문에 주말 저녁에 무언가 문화적 요소가 강한 데이트를 즐기려 나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정 표현마다 터지는 영국 남자들 특유의 명랑 반 성적인 위트가 반 섞인 코웃음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니 상대의 무릎을 애무하기 바쁜 커플들 틈에서 발레를 보고 있는 내 자신이 조악하게 느껴졌다. 어려운 표현을 깔끔하게 성공시킬 때마다 터져나오는 매우 작은 탄성과 박수 소리에 동참하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 전해져 오는 동시상영 극장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경험과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진지한 사람들 속에 끼고 싶었다. 가끔씩 들려오는 부스럭거리는 초콜릿 봉지 소리에 집중을 방해를 받을 때마다 살의가 조금씩 커졌다.

방해 요소 덕분에 종종 집중이 깨지기고 했으나 어찌되었건 이 날 공연은 몇해 동안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은 채 다른 발레를 보는 기준이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가장 유명한 발레의 하일라이트들을 한 자리에서 보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정상의 언저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발레단의 공연이라면 말이다.

2 thoughts on “Magia de la Danza”

  1. 의상과 무대은 곧 재력과 전통을 의미하니까요. 한국 무용수들은 표현 자체는 깔끔하고 테크닉도 체격도 훌륭한데 자기자신을 표현하는 데는 서툴어서 언제나 서구권에 비하면 호소력이 약한 흠이 있지요.
    하이라이트 공연이라서 무대가 빈약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때그때 무대를 갈아치우기도 힘들고, 의상과 분장은 같이 가는 거라 맞추기 힘들테니까요. 한국에서 하는 하이라이트 공연들도 무대나 의상은 약식이 되는 경우가 꽤 있어요.
    좀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립니다^^

    1. 축하 고마워요. 이곳의 신문평에 따르자면 무대와 의상을 가지고 말이 많더라구요. 하지만 저 역시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꺼라는 점에 동의해요. 이곳에서는 뭐랄까? 좀 재는 척 하는 분위기예요. 이곳 사람들의 그 애물단지같은 보수성 때문에 뭐든지 자신이 오래되고 최고라는 뭐 그런 것이 있거든요. 단지 카리브해 스타일의 역동적인 발레라고 표현하더군요. 전혀 예술적이지 않다는 뜻으로 비아냥 거리더라구요.

      하지만 이곳 언론의 낮은 별점은 그냥 부러움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솔직히 그날 공연에서 관객들의 반응은 너무나 탄력적인 움직임에 할 말을 잊은 정도거든요. 서울에서라면 기립박수를 받을 정도로 가벼운 움직임이었는데 말이예요. 어찌되었던 귀국하기 전에 로얄 발레 컴퍼니의 공연을 보고 꼭 비교해 봐야 겠어요. 이 사람들이 보기에 저는 진짜 예술을 보지 못해 카리브해 스타일에 매료된 얼치기 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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