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cked

런던에서 제작된 뮤지컬과 뉴욕에서 제작된 뮤지컬의 차이점을 굳이 비교하자면 서정성과 주제를 변주해 내는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아니 한가지를 덧붙이자면 음악에 사용되는 전자 음악의 빈도에서도 꽤 차이가 난다. 뉴욕이 오리지널 버전인 뮤지컬들이 디즈니풍의 화려한 볼거리와 퍼레이드같은 군무로 승부를 건다면 런던이 오리지널 버전인 뮤지컬들은 서정적인 선율과 선이 굵은 연기력으로 승부를 건다. 솔직히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판단하기 이르지만 나에게 조금 더 호소력 있게 다가온 뮤지컬들은 런던이 오리지널 버전인 뮤지컬들이었다.

사실 지난 토요일 밤을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 준 ‘Wicked’는 런던에서 공연된지 고작 2주 밖에 되지 않았고,  다음주까지가 프리뷰 기간일 정도로 이곳에서는 낯선 뮤지컬이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의 반응은 다소 호들갑스러웠고-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상황을 영국 사람들의 소시민적인 오버 기질이라고 정의내리기 시작했다- 실제 퍼포먼스에 비해 과도하게 즐거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후하게 점수를 주어도 고작 73점 내외인 공연에 기립박수를 보내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란 아직 버겁다. 물론 이미 지출한 비용에 대해 가장 효과적인 태도는 그것이 설령 최악의 공연일지라도 호들갑이라는 위약을 투여한 채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아직까진 무리다.

그러나 이런 오버 기질보다도 나를 절망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하모니가 부재한 코러스였다. 춤 솜씨 하나만큼은 발군이었지만 시골 교회의 성가대만도 못한 화음은 정말이지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극장의 음향 시스템도 최적화되지 않아서 소리가 난반사되었으며 공연 스텝과 연기자간에 호흡이 맞지 않아 애드리브가 이어지는 상황조차 빈번했다. 하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인만큼 볼거리 하나만큼은 풍성하다. 쉴새 없이 몰아치는 군무의 역동성은 혀들 내두를만 하고, 풍성한 소품의 활용과 창의적인 무대 디자인은 높은 점수를 줄 만 하다. 그러나 소설만큼 재미있지는, 상상하던 것을 뛰어넘을 정도로 놀랍지는 않다.

Wicked는 정신 없이 산만하고, 주제를 향한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다. 화려한 무대와 소품, 잔재미는 있으나 이야기 축선에 대한 통찰이 부족하다. 이것은 가장 완벽하게 공연된 무대에서조차 내가 불만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말이나 다름 없다. 기회가 된다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뮤지컬이지만 연인과 함께라면 대답은 결단코 ‘No’이다.

아니 이 뮤지컬의 진짜 문제는 창법에 있지 않을까 싶다. 위키드는 즐거운 뮤지컬이지만 심금을 울리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결어되어 있다. 이파마와 피요르의 사랑이, 글린다의 애처로움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어도 마음 속으로 스며들지는 않는다. 목소리가 아름다워,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결혼이란 것을 해보자고 마음먹게 되었다던 누군가의 말을 긍정하는 나로서는 이 뮤지컬에서 어떤 정서적인 아름다움도 발견하지 못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단지 그 역할을 연기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스럽게 만드는 캐릭터란 가면이 이 뮤지컬에서는 그다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내가 십대 소년이었더라면 미친 듯이 열광했을 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내게 이 뮤지컬은 뭐랄까? 사탕과자처럼 좀 짜증스런 물건이다.

어찌되었던 다시 착한 관객으로 돌아가 촌평을 해보자면 이 뮤지컬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험이란 시간이 가져다 주는 가장 좋은 선물을 버리고 9살 소년이 되는 것이다. 아름답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지만 진짜 그녀가 원하는 사랑만큼은 얻을 수 없는 한 마녀의 잔잔하지만 구슬픈 미소와 투쟁 끝에 진짜 사랑과 자유를 얻게 되는 또 다른 마녀의 해피앤딩에 집중해 보는 것.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한 남자와 그 남자를 오해 끝에 사랑해 버린 한 여자.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조차 모르는 우유부단한 한 남자의 성장을 선량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이 두가지가 그나마 이 뮤지컬을 재미있게 감상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2 thoughts on “Wicked”

    1. 정말 딱 가족 뮤지컬이예요. 공연을 보면서 그렇게 아이들이 많은 것은 처음이었어요.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제 옷에 흘리는 정도는 예사이고 좁은 통로를 움직이다가 아끼는 클래식 셔츠까지 찢어지는 정말 파란만장한 공연이었어요.(다음 날에는 12년만에 중학교때 배운 바느질이라는 것은 실제 생활에서 적용해 본 뜻깊은 날이었죠)

      가족 뮤지컬이라는 딱 적당한 단어가 있는데 어째서 적당한 표현을 못찾아 헤맸는지 모르겠어요. 딱히 나쁜 뮤지컬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제 취향하고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서 다음부터는 가족 뮤지컬은 피해주려고 다짐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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