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

애주가에게 이곳은 좀 애매한 곳이다. 술 자체의 가격은 그리 비싼 편이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스카치 위스키를 집어들 수 있는데 제대로 격식을 갖추어서 술을 마시기에는 주머니 사정을 무시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술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시간 장소를 불문하고 술에 취해 있을 수 있는 꽤나 좋은 환경이지만 술집 자체의 들썩거림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문턱이 높다고 해야할까?

그렇다면 나는 어느 편에 속할까? 이전까지 나는 술집의 소란스러움과 담배 냄새를 경멸해 왔다. 의미없는 목소리들이 만들어 내는 공허함 속에서 고독을 즐기는 것을 선호하면서도  귀가 한 뒤에는 그날 입은 옷가지들을 빨래통에 집어 넣으며 욕지기를 느끼는 이중적 태도를 견지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근래에는 한국의 그 떠들썩함이 그립다. 달랑 술잔 하나를 들고 다니며 재미없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보다는 가끔은 폭탄주도 마셔주고, 기분에 따라 미친듯이 달려보는 그 분위가 그립다.

아니 가장 그리운 것은 말장난에 가까운 블랙 유머를 이해해주는 친구들과 뒷탈이 없는 술자리 특유의 묵언계가 지켜지는 한국 사회의 불량함이다. 알코올은 자제력을 일부분 제거해 주기에 보다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지만 그 기회를 통해 내 성대를 울리는 말 속에는 정열이 없다. 사랑도 없으며, 그저 지껄이기 위해 열심히 입을 놀릴 뿐이다.

어찌되었건 이곳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pub를 발견했다. pub까지 가는 길에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서점을 구경할 수도 있으며 덤으로 유리창을 통해 LOEB시리즈가 가지런히 꼽혀 있는 서가도 볼 수 있다. 자제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까봐 먼발치에서만 바라보고 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이 서점의 서가와 술집의 의자 하나만큼은 집에 사들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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