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Paul’s Cathedral

사용자 삽입 이미지 Façade에 비해 측면 회랑이 더 멋진 성당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façade의 아름다움이 주변을 포위한 현대적인 빌딩 사이에 질식해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던 밀레니엄 브리지에서 바라 본 성당의 측면은 낭만주의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런 느낌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는 이 성당이 렌에 의해 블렌하임 전투의 승자인 말버러와 앤여왕의 시대에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어야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잊고 있노라면 저녁놀에 반짝이는 하얀 대리석 돔이 말하는 황홀한 설교를 들을 수 있다. 아니 우중충한 적색 건물群 사이로 우아하게 솟은 하얀 돔이 얇은 밤안개에 포근하게 감싸 안긴 모습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영화 속에서나 접했던 낭만적인 런던의 밤 한가운데 서 있는 듯 착각에 휩싸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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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자랑은 타워브리지도, 빅벤도, 웨스트민스터사원도, 트라팔가 광장도 아니다. 런던이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도 충분한 이유는 St. Paul’s Cathedral같은 아름다운 건축물을 가졌다는 데 있다. 사실 나에게 있어 이곳은 마음에 흡족한 것보다 귀찮은 혹은 번잡한 것이 더 많은 나라다. 하지만 그럼에도 단 한가지 예외가 있으니 이 성당만큼은 아무리 보아도 실증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성당은 밤안개 속에서, 한낮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회색의 구름아래에서도 각기 다른 매력을 발산하며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내가 이곳에서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면 한 여름 해질 무렵 뱅크사이드에서 바라 본 낙조에 물든 하얀 대리석 건물의 아름다움을 고를 것이다. 혼자인 것이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 언어의 덧없음과 기억의 허무함 덕에 어느 것도 완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괴로웠던 순간이 바로 이때였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때로 순간은 영원을 지배한다. 그리고 극히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순간이 영원이 되기도 한다. 순간이 영원히 되는 비밀의 그 순간에 가장 근접해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마음속의 속삭임이 드릴 정도로 그 풍광은 멋진 것이었다. 내가 만약 재능 있는 화가라면 영원성을 부여받았을 작품의 토대가 될 만한 인상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까닭 없이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다. 내가 느끼는 감동에 대해 설명할라치면 다리를 걸거나 재미없다는 표정을 입가에 띄울 것이 분명한 그 친구 녀석들이 보고 싶어졌다. 겉으로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어도 한 번쯤 이 굼뜬 사내를 감동시키는 그 무엇에 슬쩍 호기심을 보일 그 녀석들이 그리워졌다. 기실 인상을 어딘가에 담을 재능을 부여받지 못한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나는 이 아름다움을 공유함으로써 영원성을 부여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P.S.
고장나기 전에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성당. 아마도 로모로 찍은 롤들을 현상하고 정리할 때까지만 임시로 걸릴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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