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athan Strange & Mr. Norrell

 긴 여행이 나에게 앗아간 한 가지 습관이 있다면 그것은 경험을 글로 남기던 습관이다. 늘 새롭기만 한 경험의 홍수 속에 내 의지는 나를 배반했고 이제는 짧은 서평 하나 쓰는 일조차 버거워졌다. 『Jonathan Strange & Mr. Norrell』에 대한 서평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후 내가 쓴 첫 문장은 ‘사실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1월의 일이었다’라는 11살짜리들의 독서록에나 등장할 난삽한 문장이었다. 물론 위의 진술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이 항상 최선의 진술이 되는 것은 아니며 지금 내 경우가 그렇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야기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불리는 한 세대의 성장보다도 더 길었던 대프랑스 전쟁시기의 잉글랜드에서 시작된다. 1805년이라는 상징적인 한 해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워털루를 뛰어 넘어 Peelers가 창설되어야 하는 정치적 필요성이 제기 될 정도로 사회 혼란이 가중되던 시기 바로 직전까지의 시간대를 다루고 있는데 각 챕터는 시간대(정확히는 달로) 구분되는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에 담긴 이야기 자체는 시대적 배경과 다르게 그리 심각하지 않다. 이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두 명의 마법사 겪는 모험과 갈등에 대한 이야기이고 마법이라는 상상력의 산물과 역사가 결합된 보통의 장르 소설 양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리 포터』와 비교해보자면 난 『Jonathan Strange & Mr. Norrell』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세련된 표현은 둘째 치고 블랙 유머에 가까운 위트가 곳곳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장르 소설을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결코 12~14살 코흘리개들을 위한 책은 아니다. 위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트의 전제가 되는 배경 지식이 필요한데 그 양이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비틀어 대는 허구적 역사 소설과 현대적 문장으로 다시 쓰여 진 제인 오스틴풍의 소설 사이를 어지럽게 오간다. 마법의 중요성이 결코 낮은 것은 아니지만 장르 소설로 치부하고 가볍게 보아 넘기기에는 행간 곳곳에 배어 있는 날이 선 날카로움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이런 난해함이 전부는 아니다. 난해함과 대조적으로 소설 자체의 갈등 구조와 이야기의 전개는 매우 명쾌하다. 부수적 인물들(실존 인물들이 대부분이다)의 알려진 성격(역사가들이 평가하고 재구성한 실존 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은 명료하며 마법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배경과 시대상을 반영한 디테일의 정확성은 높게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분량의 방대함 때문에 때로는 이야기 진행의 집중도가 떨어질 때가 있는데 치명적일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하겠지만-무한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작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세계를 편의에 맞게 변형한 작품으로 이 장르에서 고전으로 살아남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스테디셀러로 서가에 오랫동안 살아남아 있으리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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