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골의 서

 가끔은 꽤 괜찮은 좋은 소설이 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두개골의 서』가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단언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으나 내가 한국을 비운 사이에 출간되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 책에 대한 언급 자체가 드물다. 하기는 좋은 소설을 발견하고 혼자만의 것으로 삼아 두고두고 음미하는 재미를 생각하면 이런 현상은 쾌재를 부를 일이다. 하지만 쾌재를 부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비평하고 분석하는 일이다. 다른 정보들로 머릿속이 채워지기 전에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소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결말에 이르는 부분에서 작가의 필력이 확연하게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멋진 플롯과 캐릭터만을 토대로 쓰인 소설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문제점인데 이 소설 역시 이 범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플롯의 마지막 완성 고리 이후 화룡정점에 해당되는 인상적인 결말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깨끗한 마무리는 어지간한 대가들이 아닌 이상 능숙하게 구사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독자 입장에서는 야박하게 굴 수 없다. 둘째야 말로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기본적으로 이 소설이 불쾌감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거울 앞에 맨몸으로 서서 자신의 알몸을 들어다 보는듯한 기분. 교양과 디그니타스 아래 숨겨진 치졸한 속마음을 들킨 듯한 불안감이 책장 너머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두개골의 서』의 소재는 영생을 이룰 수 있다는 ‘전설의 샘’이나 진배없는 하나의 고문서다. 거기에 4명의 캐릭터가 등장하고 둘은 영생을 얻고 하나는 죽임을 당하며, 나머지 하나는 자살해야 한다는 플롯이 소설을 지배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플롯을 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굳이 문장 하나하나를 분석해보지 않아도 뉘앙스만으로 결말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이 소설이 재미난 이유는 이런 플롯을 따라가는 일이 아니다. 이야기를 지배하는 것이 플롯이라면 『두개골의 서』에서는 이야기를 지배하는 플롯을 캐릭터란 구름이 덮고 있다. 그리고 캐릭터를 이해하면 플롯을 푸는 일이 그리 지난하지 않다.

『두개골의 서』에서 캐릭터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었노라고 말하는 일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캐릭터를 이해하고 그들의 동기를 파악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공정성에 위배되는 서열척도를 긍정해야 하며-쉽게 말해 근저에 깔려 있는 엘리트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긍정해야한다. 하지만 이것은 70년대나 오늘에나 그것은 자살 행위에 가깝다- 평온한 표정아래 숨겨진 자신의 공포심을 들어내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캐릭터 하나하나는 하나의 인간 군상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 속에 살아 숨 쉬는 하이드씨들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난 재미를 느끼기 보다는 전율을 더 많이 느꼈는데 캐릭터들 속에서 숨기고 싶은 가면 속의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두개골의 서』는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 불편함이 지워지지 않는 묘한 소설이다. 또한 이 소설을 읽고 느낀 진짜 감상을 공유하는 일은 정서된 문장이 아닌 숨길 것 없는 친구사이에서나 가능할 일이다. ‘Carte Blanche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하지 않다면 절대로 읽은 내색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정도가 이 책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문장이지 않을까?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