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에서 하루쯤 탈출해보려는 계획은 영하 7도의 매서운 바람과 폭설 속에 좌초될 듯싶다. 산사면을 타고 내려오는 추운 바람은 어찌 참아보겠지만 눈밭을 헤치고 나가는 일만큼은 인내심을 초월하는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십년지기에게 여행이 남긴 흔적들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대로 눈이 내린다면 계절이 풀리기 시작하는 2월 말에나 녀석들을 보게 될 것 같다.

오랜 여행을 핑계로, 마음을 번잡하게 만드는 복잡한 인파의 물결이 싫다는 이유로 들어앉은 서재방에서의 일상은 실상 마음을 공허하게 만든다. 내 삶에서 이렇게 안부 인사를 듣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까닭 없이 친구들의 애정 어린 표현이 그립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이 상당히 꼴사나운 바램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예전과 다르게 ‘잘 지내시는가?’란 이 짧은 인사마저도 서로를 버겁게 만드는 짐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바쁜 삶 속에서 짧은 서신 한 장을 쓸 마음의 여유조차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리라.

결국 오후에는 지친 내 정신을 잠시 뉘일 수 있는 그늘이 되어주는 K에게 별다른 이유 없이 메시지를 하나 남겼다. 휴가 중이라는 그녀의 답신에 잠시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털었다. 가짜 점쟁이 흉내를 내는 대상가운데 이 녀석만큼은 제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녀석의 오랜 요구를 수락하자면 녀석은 내가 아껴둔 ‘나무 그늘’이다. 그녀와의 관계맺음은 내 삶의 가장 거대한 실험가운데 하나이며 그 끝을 예상하는 일마저 두렵다. 우리 사이가 제롬과 알리사같은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번번히 강조하긴 해도 삶이 내게 허락한 것들 가운데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이며,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능력을 가진다해도 절대로 번복할 수 없는 추억을 공유했던 내 삶의 증인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궁벽한 진짜 오지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는 내 안부를 38일 동안 물어봐 달라는 쩨쩨하고, 구차하며, 비겁한 청을 아무 곳에나 확 던져버리고 싶은 요즘이다. 염치없는 무뢰배 같은 청이 입속을 맴도는 것을 보면 스물일곱 수는 세월에 바스러진 돌처럼 숨기고 싶은 내면의 균열을 들어내는 위험한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4 thoughts on “請”

  1. 궂은 날씨에도 즐겁기만한 너희를 보았어. 깜짝 놀랄 정도로 변했더라. 에스컬레이터 맞으편으로 올라오는 너를 보고는 바로 알았챘는데 네 버릇은 어디간건지… <편지>의 한구절이 생각났다고 하면 너무 무안해 할 것 같아 쓰진 않을께. <오래된 정원>을 보러가면서 네가 했던 촌평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말이야. 참 공교롭더라.
    그런데 여기를 읽다 진짜 외로운 상태는 처음이란 생각이 들었어. 때늦은 성장통이라는 사실을 모를 네가 아니지만 심술 한 번 부려 볼래. ‘잘 지내지’라곤 묻지 않을께. 이미 눈으로 봤으니까. 새해 인사는 설날에만 한는 네 버릇을 잊은 것은 아니지만 그땐 여유가 안될 것 같아 미리 해두려고. 새해에는 ‘네가 꿈꾸는 모든 일들이 현실이 되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빌어줄께. 아무래도 해마다 딱 하나 남기는 인사조차 앞으로는 버거울 것 같아 말이야. 행복해! 그리고 또 행복해!

    1. 정말 면목 없다. 하지만 변명을 하자면 눈으로 발견하지 못했을 뿐 머리로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어. 다만 굼뜬 눈이 문제였던 셈이지. 츠바이크의 그 문장을 제외하면 나 역시 『오래된 정원』의 포스터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

      잘 지내고 있지? 과는 결정되었어? 이런 질문 밖에 떠오르지 않다니 내가 정말 변하긴 변했나봐. 네가 나에게 질문을 포기한 것처럼 나 역시 네게 할 질문이 떠오르지 않아. 하지만 심술난 네 문장을 읽고 있으려니 외로움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내 하루의 23시간 50분을 지배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풀어진 머리를 조이고, 잊어버린 지식들을 회복해야한다는 급박함이야. 문제는 나도 통제할 수 없는 10분이야. 딱히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닌데 그럴 대상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당혹스러운가 봐. 마음을 의탁할 곳이 필요한 모양이다라고 되뇌이곤 하거든. 그냥 누구나 가지고 있는 1%의 불만을 침소봉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문제인데 말이야.

      내년 인사를 장담하지 못하는 너를 보면서 세삼 시간이 얼마나 많이 흘렀는지 헤아려보고 있었어. 이제는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순간들이 너무 많아져서 꽤 의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편지가 늘어나는 것처럼 점점 맺음말을 쓰기가 어려워져. 행복해. 그리고 또 행복해 너역시!

  2. 훗 그러게 누가 오지에 쳐박혀 있으래? 서울 올라와서 밥이나 사죠.
    아니다. 내가 성과급 받았으니 한번 쏠테니까 올라와.
    편지 안가지고 오면 죽어.

    1. 오지이긴 하지만 어느 커피하우스 못지 않은 서재와 Fauchon 블랜딩을 물처럼 마실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고. 거실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면 지리산 반야봉에 쌓인 눈도 볼 수가 있어. 아! 아무리 그럴듯하게 써도 여전히 오지인 것은 분명하군.

      19일 저녁에 올라갈 예정이야. 토요일에 시험 하나 봐주고 그날 저녁 혹은 일요일까지는 서울에 있을 듯. 구체적인 여정은 잡지 않았지만 만날 사람이 많지 않은 편벽한 습성의 나로서는 성과급 헐어서 밥 사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사실 두 눈을 반짝거리며 잔뜩 기대하고 있어- 기차 예약하자마자 전화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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