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ly the things the heart believes are true!

책에 관하여
한국을 비운 틈에 출간된 책들을 서가에 채워 넣었다. 신뢰하는 리뷰어들의 침묵(개중에 두 곳은 링크 자체를 잃었다)을 증거 삼아 2006년 하반기의 도서 시장은 황무지나 다름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서점에는 절판과 반값 세일 사이의 경계선에 놓인 놓치고 싶지 않은 책들이 몇 권이나 쌓여 있었다. 결국 언제 읽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재방의 거대한 뱃속에 일단 던져두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책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노릇인 모양이다. 참 지난여름에 서재에 던져두고 갔던 책들의 대부분은 연말을 이용해서 먹어 치웠다. 제대로 된 리뷰를 쓰기에는 시간이 여의치 않아 짧은 코멘트로 된 긴 리스트로 작성중인데 그마저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지난봄에 빼놓은 리스트와 뒤섞여 1종 프로그램 오류를 토해내고 있는 참이다.       

배우에 관하여
배우에 관한 내 사고 방식은 지극히 폐쇄적이고 불건전하기 짝이 없다. 남자 배우들은 애당초 인지의 영역에 포섭되지 않으며 여자 배우의 경우 극중의 캐릭터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현대의 최신 문법에 맞춰 그녀가 지닌 이미지와 순간순간의 매력에 매료될지는 몰라도 희노애락을 모두 아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바라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삭막하지만 다소 애매한 애늙은이로 십대를 보낸 나로서는 당연할 수 밖에 없는 반응이다. 그런 것에 열광하기에는 내 십대는 꽤 바빴고, 스스로가 유치하다고 정의내린 행동들을 실행에 옮길 만큼 용감하지도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난 사람보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천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견지해오던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극중 캐릭터에 대한 호감으로 무심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매력적이지만 좌절을 두려워하는, 도도하지만 유리처럼 쉽게 부셔지는 인간을 발견했다. 아니 극중 캐릭터란 분장이 한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란 것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 무엇보다 이런 성격에 저항력이 0에 가깝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앞으로 어떤 발언으로-아마 친구들이 믿고 있거나 알고 있는 나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들일 것이다-친구들에게 당혹감을 선사할지 암담하기만 하다.

오지에서의 일상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로 햇살이 따스한 하루였다. 꽤나 쌀쌀하던 지난 한 주를 짧은 반바지차림으로 지냈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던 식구들은 긴바지와 함께 꺼내 입은 분홍색과 하얀색이 반복되는 화사한 스프라이트 셔츠에 한마디씩 한다. 밖에 돌아다니는 것이 취미인 녀석이 공부한답시고 앉아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란 어머니의 말씀이 뒤통수에 와 닿는다.

오지에서의 삶은 이렇다. 지난 2주 동안 누이를 제외한다면 젊은 처자라고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고, 택배 배달 청년들을 제외한다면 아버지이외의 성인 남자 역시 보지 못했다. 거실 소파에 앉으면 지리산 반야봉이 보이고, 부엌 창문으로는 이름 모를 7부 능선에 쌓인 눈이 보인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길에 들리는 바닥이 들어난 작은 저수지에서는 물고기들이 파닥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서재방에 앉아 커피와 홍차, 녹차로 이어지는 차의 대향연을 즐기기 여념 없다.

사실 그럴듯한 꾸밈 뒤에 숨겨진 진실은 이렇다. 시간은 많은 것들과 화해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화해는 미움과 증오를 버리게 만들었고 그것은 다시 모든 감정이 비롯되는 어떤 시작점을 앗아가 버렸다. 화해는 분명 기분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 화해는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기도 한다. 화해 끝에 내가 얻은 평화는 조용한 것인 동시에 공허한 것이 되었으며 이제는 어디에 마음을 투묘해야 할지 모르겠다. 바람이 노크하고 지나갈 때마다 유리창에 비친 건장한 사내의 등을 획인하게 되지만 그 등으로 덥혀줄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에 방안을 산책하듯 맴돌며 낯선 거리를 걷던 순간이며 대담한 포옹과 긴장감 넘치던 한밤중의 산책 같은 것을 비를 맞으며 세상이 무너진 듯 방황하던 오래전의 못난 내 모습에 겹쳐보는 것이 아닐까?

Post Scriptum
Happy birthday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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