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원 예찬

 지기와 나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대표적인 ‘십원’짜리들이다. 가지기에는 모양이 나지 않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평소에는 거의 용도가 없으나 아주 가끔은 그것의 부재가 아쉬운 존재. 냉정해서 나쁠 것이 없다고 믿는 우리로서는 ‘십원’짜리 이론을 통해 스스로를 반성한다. ‘십원’짜리에서 벗어나 고액권이 되고 싶지 않으냐고 스스로를 꼬드기기도 하고 어째서 우리가 ‘십원’짜리에 불과한지 심도 있게 고찰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고찰의 결과는 항상 같다. Pros, Cons가 뚜렷하게 들어나는 사람들은 신비감이 없다. 신비감이 없다면 내재가치가 과대평가되는 법이고, 낮은 평가가치는 가격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차대조표처럼 Pros와 Cons의 차변과 대변이 딱 맞아 떨어진다면 더 이상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십원’짜리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이것도 나쁘지 않다. ‘십원’짜리들에게는 adventuress가 따라 붙는 법도 없고, 웬만한 실수 정도는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다. 홀로 즐겁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기만 한다면 제법 괜찮은 외관을 유지할 수도 있다. 가끔씩 까닭 모를 우울함의 진창에서 허우적거리는 마의 시간대가 짧게 존재하긴 하지만 고액권이 되어 진폭이 큰 희비의 쌍곡선을 경험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그 여유를 스스로의 삶을 돌보는데 사용할 수 있다. 이야기를 사랑하고, 차를 좋아하며, 누군가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열렬하고 극적인 그 무언가를 누릴 수는 없지만 소소하지만 따사로운 그 무엇을 즐길 수는 있다. 삶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운데 하나가 사랑이 아니라면 ‘십원’짜리 매력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가끔 ‘십원’짜리에게도 참을 수 없는 순간은 찾아온다. 이른바 情理解固의 시간인데 이것은 ‘십원’짜리로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시간과도 같다. 고액권에 투자 결정을 내린 누군가가 과감하게 ‘십원’짜리를 버리기로 마음먹은 순간이다.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엉켜있던 인연의 매듭은 어느 순간 헐렁해지고 예의바르면서도 감각적인 문구로 포장된 최후통첩이 도착한다. 안녕이란 말을 뜻하는 문장이 얼마나 많을 수 있는 지 셈하는 일은 흥미롭지만 그 셈의 대상이 되는 일은 전혀 즐겁지 않다. 그렇게 시간은 슬픈 노래처럼 흘러간다.

그러나 아직 절망하기는 이르다. 아니 절망할 필요조차 없다. ‘십원’짜리로서의 경험은 삶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들과 포기해도 되는 것들을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하며, 헛된 맹세의 공허함을 포착하는 능력과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는 신기한 재주를 제공한다. ‘십원’짜리로서의 삶은 집중력이 필요한 관찰과 인내심이 필요한 기다림, 협상의 윈셋을 넓히는 포기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얻는 진짜 수확은 바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자신감이다. 뭐 그러니 ‘십원’짜리 매력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P.S.
지기에게. 앞으로 다시는 소위 ‘십 원’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야. 그것이 오늘 결정한 내 두번째 정책이야. 그러니 자네도 프렌즈를 접게나. 그리고 고마워. 김군에 말에 의하면 ‘그 녀석도 누군가가 필요할 때’가 있을텐데 마침 그때가 요 며칠이었나봐. 새해가 되면 정말 어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께. 내 이름으로 약속할께. 그리고 만약 어제와 같은 모습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면 지체없이 말해주어야 해!    

2 thoughts on “십원 예찬”

  1. ‘십원’짜리라는 표현은 단순히 ‘연애시장’에서 불리우는 평가라는 사실을 언급했을 필요가 있을 듯 한데…… 조금 늦게 읽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언제든 지적해 주겠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이는 자네가 훨씬 ‘인간다울 것’같고, 그런 자네를 우리는 더 좋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나^^

    1. 지난 번에 사과 소주를 마시면서 나눈 이야기를 되새김질해보자면 아직 우리는 기대값은 어쩔지 모르겠지만 해놓은 것은 연애시장이나 인력시장이나 딱 ‘십 원 ‘짜리야. 한 시장에서는 몰라도 다른 시장에서는 기대값을 뛰어넘는 수지 맞은 투자가 되어야 하니까 이렇게 초조한 거잖아 우리?

      그런데어째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십대 중반과 후반의 경계에 서 있는 수염난 늑대같은 치들 밖에 없는 걸까? 그런 너희가 진짜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데 교정을 걸으며, 강의실에 들어가 주변을 관찰하며 ‘서시같은 미녀’ 타령을 하는 나는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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