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냉혹해지기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언제부터인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우아하게 냉혹해지기’와 같은 뜻이 되었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논리 검증 같은 것은 모른 척 잠시 제자리에 놓아 두자. 중요한 것은 ‘어른이 된다’ 와 ‘우아하게 냉혹해지기’의 상관관계이지 이것이 보편성을 지니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니 말이다.

‘우아하게 냉혹해지기’는 역설적이지만  ‘촌스럽게 순진하기’ 단계에서 비롯된다. 한껏 고양되다 못해 과잉에 가까운 감정 상태와 주체할 수 없는 열정으로 촛농처럼 삶을 낭비하던 A는 좌절과 배신 등 복수극에 등장할 수 있는 모든 소소한 사건들을 다 겪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게 된다.

A는 그가 사랑해 마지 않았던. 아니 정상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촌스럽게 순진하기’가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 방식이며, 사람들의 호의를 얻기 보다는 비웃음을 얻기에 딱 좋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A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바꿔 놓는다.

열렬하게 타오르던 감정은 삭막해지고, 끝을 모른 채 이어지던 말은 잠잠해지며, 기분 따라 움직이던 하루는 꽉 짜인 스케쥴에 관리되는 하루로 변한다. 웃음이 줄어드는 대신 비웃음은 늘어가며, 칭찬보다는 논쟁과 비판에 익숙해진다. 아니 그것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든다. 무관심과 무신경함이 삶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아름답거나, 멋진 존재에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며, 귀찮다라는 말이 쉽게 입에 오르내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지금 ‘촌스럽게 순진하기’ 단계를 지나 우아하면서도 쿨함을 지향하는 단계에 접어 들었다. 냉정하게 잇속을 챙기고, 알뜰하게 삶을 보살핀다. 예전에는 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이 열정과 진솔함이었는데(가끔은 무모함이기도 했다) 이제는 유용성을 토대로 가치를 판단한다. 시간과 돈이 중요해진다. 혼자 보는 영화에 익숙해지고, 말수가 줄어드는 만큼 통화량도 줄어든다. 자기에 대한 투자는 불어나는데 자기 밖의 모든 이들에게는 점점 인색해진다. 과연 이런 것이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일까?

가끔은 예전의 ‘촌스럽게 순진하던’ 그때가 그립다. 사랑한다는 말을 손쉽게 입에 담을 수 있던 그때가 말이다. 지금은 사랑조차 과거처럼 명료하지 않으며, 미움도 강렬하지 않다. 더이상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며 슬픈 표정을 짓는 일은 없다. 하지만 가끔은 끈적하게 사랑한다 말하고, 집요하게 손을 붙잡고 싶다. 전화를 들었다가 왠지 모를 어색함에 다시 집어 넣는 것은 컬러링만 듣다 전화를 내려놓는 것보다 더 촌스럽다. 과연 ‘우아하게 냉혹해지기’가 정말 우아한 것일까? 치촐함과 상처를 두려워 하기 때문에 피하고 숨는 것을 그렇듯하게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28th, Jun, 2005
P.S.
스물 다섯 6월에 작성한 글. 이 글을 이제서야 발견한 이유는 폴더 정리의 허술함 탓이 크다. 아니 조금 더 냉정하게 따져 보면 당시에 ‘우아하게 냉혹해지기’란 문제는 내 삶을 압박하던 진짜 두통거리였기에 결론이 나지 않은 화제로 삶을 더우 복잡하게 만들 의향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것과 화해한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머리속을 맴도는 문장은 ‘내 삶도 꽤 재미난 것이었군’이란 한 마디뿐이다.

4 thoughts on “우아하게 냉혹해지기”

  1. 열심히 읽었는데 예전에 쓰신 글이로군요 ^-^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건지 이렇게 되어버린건지는 모르겠지만 전 이제 고작 3달전에 써놓은 글을 보아도 ‘ 어, 이거 내가 쓴거 맞아?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 순간에 생각한 것을 적어서인지 그만큼 제가 빨리 변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과거를 지우며 살고 있는건지, 모르는 사람이 적은 것과 같은 저의 글을 볼때마다 참 묘한 기분이 되어요. 물론 그래도 제가 적은 것인지라 대부분의 것들을 즐겁게 읽을 수 있지만 가끔 상당히 다른 생각을 마주할때면 움찔 한답니다. 그리고나면 더 과거의 자신과 철저히 이별하자고 다짐하곤 하고요.

    블로그도 조용하시고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서울엔 개강전까지 안 올라오시나요? ^^

    1. 일단 이번 주 금요일에는 다녀올 듯 합니다. 설연휴가 지나서야 본격적으로 지내게 될 것 같구요.

      제 경우에는 순간 순간 달라지는 모습을, 그러나 다르면서도 어딘지 같은 그 모습을 남기려고 글을 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고, 나쁜 과거는 잊고 괜찮은 현재와 멋진 미래만 간직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잘 모르겠어요.

      항상 같기만 한 것 보다는 순간 순간 달라지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오랜 시간 동안 쌓인 기록을 읽은 묘미일테니까요. 그리고 십 년 후에, 이십 년 후에 읽는다면 지금 느껴지는 차이처럼 그렇게 큰 차이로 느껴지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발견하고 음미할 수 있을 때 그 차이를 최대한 쥐어 짜보려구요.

  2. 난 그래도 끝까지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고 싶다. 우아하게 냉혹하다면 ‘여백’이 없어서 슬플 것만 같아. 자네도 촌스럽게 순진한 사람이었으면 한다. 어쩐지 컨트리 보이에게 걸맞는 따뜻함과 정의 느껴지지 않는가? 물론 서울에서 살기에는 조금 부적합한 생활양식이지만 말야.

    1. 그렇고 싶긴 한데 자칫 아무때나 밟아도 되고, 편리할 때 불러서 쓸 수 있는 만만한 사람이 될 수도 있지. 그런 희생을 치루어서라도 잡아야하는 인연은 없다는 것이 어제로부터 배운 교훈이고. 지난 밤에 이야기한 음모이론에 따르면 21살부터 작년까지의 우리는 그런 ‘촌스럽고 순진한’ 모습 덕에 노예화 되었던 거야. 그러니 마음을 놓아도 되는 그런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촌스럽고 순진한’ 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해!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