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데니오 납치사건

 지난 어느 가을 날 Bath로 여행을 떠난 나는 기관고장으로 Swindon역에 잠시 내릴 기회가 있었다. Swindon이라는 지명을 보는 순간 플랫폼에 서 있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모르게 서즈데이 넥스트일지도 모를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역사 어딘가에는 SO에 속하는 사람들이 서 있을 것 같고, 느릿하게 감속하는 기차의 기관차에는 네안데르탈인이 타고 있을지 모른다는 착각을 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웨일즈에 대한 방어 거점으로 성장한 이 도시에서 그녀와 SO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고작 내가 발견한 것이라고는 Swindon에서는 서즈데이 넥스트 패션이 대세라는 사실과 소설과 달리 평범하고 예쁜 소녀들이 토요일 아침 산책을 즐기는 평화로운 도시에서 위험한 모험이 시작될만한 단초라고는 보이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도도새도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광고 카피 같은 서평을 쓰자면 『제인 에어 납치사건』은 서즈데이 넥스트 시리즈의 시작에 불과했노라는 문장을 서술할 수 밖에 없다. 『카르데니오 납치사건』은 하나의 이야기로는 전편보다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와 이후의 두 이야기를 잇는 가교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시리즈의 첫 이야기에서 열렸던 새로운 세계는 조금 더 확장되고 정교해졌으며 이어질 뒷이야기에 대한 입맛을 솜씨 것 돋우고 있다. 아니 조금 더 부연하자면 하나의 이야기로써 완성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제인 에어 납치사건』이 기승전결을 갖춘 하나의 독립된 사건의 경과를 다루고 있다면 『카르데니오 납치사건』 속의 사건은 거대한 이야기의 얼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명쾌한 끝마무리가 없다. 또 전작과 유사성을 부여하느라 선택한 역제가 되려 소설을 이해하려는 독자의 노력을 무위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인 에어 납치사건』만큼이나 재미난 소설이라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오히려 뒷이야기가 언제쯤에나 번역될지 기다리는 시간이 고통스러울 정도다. -원서를 구하려 해도 당장에 국내 보유 재고분이 없다-

서재방 창가에 면한 소파에 앉아 서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고단한 현실의 일상에서 도망쳐 책갈피 사이의 이야기 속으로 숨고 싶을 때가 있다. 생각해 보라. 혼란스런 19세기 혁명기의 리스본으로 들어가 하이메 아스타를로아의 행로를 뒤쫓는 모험으로 하루를 보낸다거나, 포스터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 토스카나의 구릉을 배경으로 한 남녀의 키스를 감상하는 일 따위를 말이다. 에드몽 당테스보다 먼저 파리아 신부를 만나 인생을 역전시키고 싶지 않은가? 록우드씨의 친구가 되어 아름다운 캐시에게 연정을 품어 보는 그런 근사한 휴가를 즐길 수만 있다면 현실이 지금보다 한층 힘겨워 진다해도 참아낼 수 있으리라. 제스퍼 포드는 바로 이런 세책 병자들이 마음속으로 은밀하게 꿈꾸던 욕망을 플롯으로 옮겼다. 그가 아니라면 언제인가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을 말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연말과 연초의 번잡함으로 아직 책장을 열지 못한 세책병자들에게 이 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 테니 말이다.

1 thought on “카르데니오 납치사건”

  1.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데려갈게요.^^(북하우스 블로그, 출처 밝힙니다)
    (혹시 스크랩을 원치 않으실 경우 알려주시면 지우겠습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