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묘촌(八つ墓村)

 추리소설에 대한 열정을 문고판 시리즈로 달래던 십대 초반 이후- 정확하게는 그렇게 읽었던 소설마다 뒷이야기를 모두 예측하고 있던 황홀해하던 꿈에서 깨어난 이후. 사실 난 이미 읽었다는 사실은 잊고 있었지만 소설의 플롯 자체만은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난 추리소설의 범인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몇 개의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핵심 용의자가운데 혹은 내러티브를 위한 주인공을 제외한 등장인물 가운데 첫 번째 인물이 범인이라는 공식에서 크게 벗어난 경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추리 소설의 모든 단서는 처음 열 페이지에 남겨 있다는 사실만큼 유용한 공식이 또 어디 있을까? 사실 이런 공식의 요체를 인지하고 나면 작가의 농간이 더욱 잘 보인다. 어디쯤 이야기가 진행되었는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의 한가운데에서도 지도와 나침반을 갖춘 셈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팔묘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추리소설의 공식 아닌 공식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옥문도』를 읽어본 독자라면 1/3시점에서 범인을 알 수 있고, 추리소설의 공식에 충실한 독자라면 인물 소개와 1/10정도의 본문만으로 어렵지 않게 범인을 직관으로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운 추리소설을 쓰는 요코미조 세이시와 무능한 긴다이치 코스케에 대한 불만은 잠시 접어두어도 좋다. 트릭과 추리기법 면에서는 졸렬하지만 분위기만큼은 썩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런 상황을 이렇게도 표현해 볼 수 있다. ‘<텍사스전기톱연쇄살인사건>은 공포영화의 규칙에서 한 치의 예외도 없지만 제시카 비엘의 훤칠한 뒷모습 덕분에 언제 끝나나 하고 자꾸 시계를 보게 되지는 않잖아?’

 긴다이치 코스케가 수사를 통해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제삼자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팔묘촌』을 혹평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 비난만큼은 수용할 수가 없다. 만약 그가 전통적인 탐정의 시선을 통한 관찰이라는 방식을 선택했다면 범인이 너무나 투명하게 들어나 버려서 추리 소설로서의 맛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는 외부로 밀려나 은폐되는 범인의 행각이 탐정의 입장에서는 동기를 제외하고는 너무나 투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긴다이치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살인을 통해 전달되는 혹독한 분위기를 보다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관람석이라는 안전한 장소에서 관전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신의 농간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거스를 수 없는 파고 앞에 떨고 있는 한 인간의 옆에 서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미사여구로도 감히 『팔묘촌』이 좋은 추리소설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꼭 읽어볼만한 추리소설은 더욱이 아니고, 그저 어딘가로 향하는 기차여행 속에서 옆자리에 앉은 낯선 이의 전투적인 태도를 사근하게 무시하기 위해 이어폰과 함께 가방에서 꺼내는 작은 소품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5 thoughts on “팔묘촌(八つ墓村)”

  1. 근데 전부 서양스타일이라서 건강에는 그다지 안 좋을 듯.ㅋㅋ
    아무튼 이따 보세나~

    1. 뭐야! 새벽 4시 반. 삼일절을 맞이해서 선열들의 뜻을 되새기다 보니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잠들지 못한 것이더냐? 아무래도 점심때 보는 것은 힘들겠는 걸

      행복과 귀찮음을 따지기 전에 경제적인 면을 먼저 분석해봐야 겠는걸. Prada Girl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어. 저런 영부인이라면 아마 너의 소득수준을 항상 상위 3%이내로 유지해야 할 것이고, 처음에는 신선했던 많은 일들이 결국에는 속이 끊다 못해 숯덩어리가 되어 버리는 일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아예 장보기 살림을 모른다면 마냥 행복해 보이겠지만 저 정도 살림을 유지하기 위한 소비성향을 짐작할 수 있으므로 난 사절일세!

      조금 더 악평을 하자면 위기의 주부들의 브리를 생각해 보라고. 브리라는 캐릭터에는 그래도 우아함이 담겨져 있지만 저 캐릭터는 마담 테나르디에처럼 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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