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또 다시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보니 어느새 봄이다. 들숨마다 꽃내음이 가득 찬 봄은 아니지만 제법 따뜻해진 햇살이 아침을 반기는 그런 봄. 그리고 그런 봄을 맞이해서 이런 저런 소소하지만 중요한 일들을 무사히 넘겼다. 3월이 시작되기 전에 복학생 친구 녀석들과 ‘소주 한 병’짜리 모임도 가졌고,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던 복잡한 일도 거의 마무리를 지었다. 이제 인터넷 서비스를 연결하고, 편지쓰기나, 주소록 정리 등의 소소한 봄맞이 연례행사만 끝내면 된다.

 매 끼니처럼 반복되는 야근에 지친 친구들은 아직도 학생이란 신분을 보유한 나에게 부럽다는 말을 던지고는 한다. 하지만 작년 봄과 올해 봄은 느낌이 너무 다르다. 올해 봄은 작년 봄에 군필자로써 느꼈던 홀가분함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대신하고 있는 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정을 가득 매운 신입생들의 활력과 비교해보자면 내 모습은 참으로 ‘늙수레’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숨기려고 해보았자 숨길 수 없는 세월이 준 선물이라고 자위해보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모습이 참 부러운 것이다.

 원형극장을 담은 백주년기념관의 지하층의 앉아 독특한 블랜딩의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학교 당황해 있으려는 찰나 크리스천으로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물건이 옆자리에 앉는다. 어여쁜 처자라도 반갑지 않은 그 상황에 나못지 않은 늙수레한 인물이기에 정중한 축객령을 내렸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참 만만한 인물로 변했나보다. 아니면 그런 축객령이 레기오투스의 스페인 단검처럼 그의 신앙심에 불을 지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축객령에도 불구하고 자기 말을 꺼내놓기 시작한 태도가 역린을 건들었다. “제가 자리를 피해드릴까요? 아니면 그쪽에서 피해주실래요?” ‘꺼져버려’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수많은 말 가운데 상대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그 말이 입술에 걸렸다. 쳐진 어깨로 걸어가는 그 물건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얼굴에 쓴웃음이 걸렸다. 어쩌면 누군가의 말처럼 난 정말 지옥에 떨어져 마땅할 그런 나쁜 사람이 맞는가 보다.

 해마다 봄이 주변에 내려앉을 무렵이면 무언가 색다른, 인상 깊은 한 해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색다른 인상’ 대신 내 삶에 고명으로 얹히는 것은 낮은 농도의 우울과 몽상이다. 등을 침상에 뉘이자 말자 잠에 빠져드는 일상이 오기 전까지 나를 점령하고 있는 그 기분 말이다.

2 thoughts on “봄, 또 다시”

    1. 이럴 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 ‘정말 너 밖에는 없다’라는 말이야. 왜 네 말이 나한테는 심기증 + 우울한 망상의 좋은 치료제가 되는지 모르겠어.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무언가 사악한 수법으로 네가 나를 중독시킨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주에는 뜬금없이 ‘나 회사 앞이야’ 하면서 전화 넣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수요일 전까지 일 좀 바싹 해놓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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