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도토스의 역사

 나란 사람에게 존재 증명을 부여하고 있는 수많은 악행가운데 하나가 있다면 소설의 영화화에 나쁜 점수를 준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도 몇 가지 예외가 있으니 바로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한 예이다. 소설만큼이나 영화도 나쁘지 않았다는 오래 전의 생각을 헤로도토스의 『역사』의 리뷰의 첫머리로 삼은 이유는 명백하다. 이 소설과 영화를 보고나서야 비로소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어볼 용기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세계사 교과서에 실려 있는 간결한 한 줄의 문장으로 헤로도토스의 『역사』란 이런 책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내 생각이 진실과 얼마나 큰 간격을 두고 있었던지. 또 가제스와 칸달루스왕에 얽힌 이야기의 경우 플라톤 버전에 비해 헤로도토스의 버전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Palazzo Massimo alle Terme에서 헤로도토스의 두상과 조우한 적이 있다. 로마 시대의 복사판임에도 두상을 통해 전해져 오는 그의 느낌은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작자 개인에 대한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다와 육지. 그리고 역사의 지평선을 함께 바라보는 듯 한 표정을 지닌 사내였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엄밀하게 말해서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역사’라는 역제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통사는 아니다. 되려 페르시아 전쟁에 초점을 맞춘 편사에 가깝다. 하지만 편사라고 정의 내리기에는 다루고 있는 영역과 시대의 범위가 광범위하다. 소아시아와 메소포타미아, 이란고원과 이집트, 그리스와 스키타이에 이르는 당시 사람들에게 알려진 모든 세계가 그의 저술에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페르시아 전쟁’을 설명하기 위해 헤로도토스는 전쟁 당사국의 역사와 배경을 탐구했으며 그 탐구로부터 그들 각자를 정의하는 특성을 추출해 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비롯된다. 아시아 세력과 일부 그리스 세력의 전쟁을 정의하기 위해 내세운 동과 서의 대결이란 관념을 곡해한 독자들이 헤로도토스 사후 수천 년 동안 줄기차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시아적인 특성의 대표 요소로 난폭함과 전제주의에 의한 노예화를 꼽았으며 그리스적인 요소로 고귀한 희생과 그를 통해 획득한 자유를 강조했다. 계몽주의 시대의 관점으로는 나무랄 곳 없었을 이 해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런 일반화가 실상 양측 모두의 특성이 될 수 있으며 아울러 오늘날에도 수많은 불편부당한 차별과 대립을 강조하는 관념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그릇된 해석의 고착화는 여전히 멈추지 않는 거대한 핏줄기의 원류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페르시아 전쟁에서 보여준 아테네인들의 용기와 테르모필레에서의 희생을 폄하할 의도는 없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즐기는 세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가 그들의 용기와 희생에 가슴 속에 불러일으키는 고양된 정신에 속아 넘어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에도 주의할 점은 있다. 그 시대 그들이 믿고 있던 가치가 훗날 어떻게 변질되고 변모해갔는지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최후의 300인이 되어 종국에는 주먹과 이빨로 적을 막아야 했던 라케다이몬인이 되어 보는 것이나 중갑보병으로 마라톤에 참전했던 교외에 작은 장원을 가진 농부와 노잡이로 살라미스 해전에 참가했던 도시 아테네의 소상공인이 되어 그들의 기분으로 전쟁을 함께 겪어보는 것이 이것이 제일 중요한 감상의 맥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 다른 방법은 대제국인 페르시아 입장에서 계륵 같은 한줌의 그리스를 바라보는 것이다. 통치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인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점령해야 하지만 경제적인 실익은 거의 없는데다가 군사적으로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원정. 그들의 안타까운 실패를 바라보며 얌체 같은 그리스인들의 성공에 배 아파하며 페르시아의 불운한 패전을 동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야기꾼 헤로도토스가 들려주는 먼 나라, 오랜 제국의 이야기들을 아련함 속에서 들어보는 방법이 있다. 그가 들려주는 낭만적 역사 속에서 고대 세계의 수많은 전승들과 이야기에 취해 있다 보면 어쩌면 삶에 도움이 될지 모를 단편과 조우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로 변주되어 왔다. 『역사』에서 진짜 ‘역사’만 추출해낸 학자들의 저술도 있고, 테르모필레 전투나 살라미스 해전 등의 특정 사건들을 소재로 쓰여 진 소설들도 있다. 이집트와 페르시아의 역사는 별권의 책으로 편집되어 출간되기도 하고, 『역사』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그림의 소재로 차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변주는 이제 시작일 뿐 끝이 아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동안 지금껏 보아온 변주보다 더 많은 변주와 만나게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5 thoughts on “헤로도토스의 역사”

  1. 안녕하세요. 며칠 전 제가 보낸 문자 받으셨나요? 답문이 없는 까닭이… 단순한 불찰 때문인지 아니면 고의적인 것인지 몰라서 블로그에 이렇게 몇 자 남깁니다.

    1. 경황없이 바빴던 지난 며칠동안에 무언가 미스 매치가 벌어진 모양입니다.
      드라마 속의 미스 매치는 항상 매회 끝마다 꼬여버린 일들을 잘만 매듭짓던데
      전 머리만 긁적이고 있네요. 변명을 포함한 짧지 않은 답신을 띄웁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우연이란 괴상한 힘에 농락당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노파심이 생기네요.

  2. 다행이에요. 딱지 맞은 줄 알았거든요. 저번에 입실렌티 보여주시기로 했던 약속 여전히 유효한지 궁금하다는 문자였어요. 마지막 학기라 바쁘신 듯한데 제가 괜히 부담만 드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1. 아직 마지막 학기는 아니예요. 사실 그것 뿐만아니라 지난 여름에 아껴놓은 비오는 날의 술 한잔도 기억하고 있답니다. 꼭 비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사용 가능하다는 부관이 첨부된 것으로요. 묵혀 놓은 그 건을 핑계삼아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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