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대학에서의 마지막 하루들을 보내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가운데 하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같은 수업을 듣게 된 아직은 어린 친구들에게 빠져들어 보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란 사실이다. 이제는 ‘새신랑’에서 ‘헌신랑’으로 전락하고 있는 형님들이 그렇게 말하던 복학생의 반사이익 같은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흘러간 과거가 다르기에 어쩔 수 없이 발견되는 그 삶의 간격만큼은 어쩔 수가 없다.

 ‘향수’를 보러 가겠노라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그네들 옆에서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 전 감각을 되살려 생선더미에서 태어난 그루누이를, 그리고 그 작은 코를 상상하며 이야기의 조각들을 끼워 맞추고 있는 내가 참으로 낯설다. 결론적으로 그네들이 열광하는 것들에 나는 무지하고, 그네들 역시 내가 열광하는 것들에 무지하다. 이런 간격을 매울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 한다면 그 놈 참 대단한 녀석이다!

 쏟아지는 두툼한 Case materials들 틈바구니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일주일이 훌쩍 흐른다. 하루라도 게으름을 부리면 어느 사이에 감당하지 못할 만큼 쌓이는 짐들이 만들어 내는 암초사이로 표류하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하루쯤 암초사이로 배를 몰아대는 편벽한 내 습성은 여전히 그대로다. 하루쯤 난파선이 되어 황망한 표정으로 유령처럼 교정을 배회하는 그 습성에서 언제쯤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요즘 들어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 하나는 ‘Am I Falstaff?”와 ‘Where is my G. Taro?’라는 질문이다. 작년에 떠났던 여로에서 스트랫포드도 아닌 파리의 바스띠유 광장에서 Falstaff란 이름의 술집을 발견한 적이 있다. 자리에 앉아 삼페인 잔에 제공되는 맥주를 홀짝이려는 찰나 머릿속으로 그리던 Falstaff와 너무나 닮은 한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기분 좋은 발견이란 듯 왼손 검지로 삼페인 잔을 만지작거리려는 찰나 그들에게서 미래의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15년 쯤 후에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입구에 설치된 조잡한 Falstaff의 모형처럼 내 존재를 웅변적으로 대변해주는 인물이 어디 또 있을까?

 아무리 침묵과 겸손, 그리고 평화로움 지배하는 세계로 편입되어 고요한 삶을 살고자해도 세상은, 삶은 나에게 그런 것들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세상이 내게 원하는 것은 시끄러운 Falstaff가 되어 내 삶을 촛농처럼 낭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Falstaff의 삶이 즐거운 것이라 해도 난 그런 삶을 참을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Falstaff의 삶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줄 어떤 계기인지도 모르겠다.

 언제인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먼 옛날 앙드레 말로의 짧은 전기에서 게르다 타로의 사진을 조우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녀가 언급된 짧은 단락을 읽으며 로버트 카파와 그녀가 만들어 냈던 모종의 광휘를 발견하게 되었다. 훗날 그것이 매우 현실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농담 같은 사기극이고, 그 소품 같은 사기극이 종국에는 아름다운 로망이 되었으며, 다섯 개의 전쟁을 누빈 종군기자가 첫 번째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심장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 순간 이후 난 마음속으로 게르다 타로 같은 사람이 내 삶에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끊임없이 생각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건달에 가까웠던 아마추어 사진기자의 서투른 삶 속에서 운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끌어 낼 줄 알았던 동시에 짙은 사랑에 결코 질식되지 않았던 그녀 같은 존재가 어느 날 내 앞에 나타나 이 지독한 수렁에서 건져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우렁각시 반 평강공주 반이 섞인 그런 이상적인 존재를 꿈꾸는 내가 어리석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리석음을 수없이 반복하며 어리석게 사는 것은 나를 비롯한 모든 인간들의 공통 생활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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