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스미스

기억력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 『핑거스미스』를 읽기 시작했는지는 종잡을 수 없다. 2003년 2월쯤 슈발리에의『진주 귀고리 소녀』를 한참 재미나게 읽을 즈음인 것 같기도 하고, 2003년 12월이나 2004년 1월의 일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나답지 않게 한 권의 소설을 읽는데 걸린 시간이 며칠 단위가 아닌 몇 해라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사실이다. 궁색한 목소리로 변명을 하자면 빅토리아 시대의 단어보다는 아직은 사회가 덜 복잡했던 조지언 시대의 단어에 더 강한 면모를 보이던 내 어휘력이 발목을 붙잡았노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핑거스미스』보다 우선 순위에 놓인 책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 진실이리라.

사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가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현대판 『올리버 트위스트』라 불러도 될 정도로 섬세하게 빅토리아 시대를 묘사했다는 데 있고, 다른 하나는 레즈비언 소설로서의 가치 때문이다. 하지만 워터스의 『벨벳 애무하기』와 다르게 『핑거스미스』에서의 레즈비언 소설적 요소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 그녀들의 애정 행각은 뭐랄까 좀 서투르게 느껴진다. -지난 가을 베니스에서 목격한 어느 레즈비언의 키스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이런 내 평가가 이해에 기반한 것이라기 보다는 관념적 편견이란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문장을 읽는 동안 무언가 미묘한 감정들이 가벼운 접촉을 통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 이상은 나로서는 무리였다.  

하지만 범죄 소설로서의 『핑거스미스』는 나쁘지 않다. 범죄의 플롯은 단순하다 싶을 정도로 정형화 되어 있었지만, 세부 묘사에서 보여주는 세계는 놀랄 만큼 색달랐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가 라파엘 전파의 인물들이나 초기 인상주의 풍경화에서나 발견할 법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면 거의 비슷한 시대를 다루고 있음에도 『핑거스미스』의 세계는 이민 시대의 맨하탄에 가깝다. 런던의 밀수꾼들과, 사기꾼, 소매치기, 정신병원과 사형대, 포르노그라피에 탐닉하는 신사들에 대한 묘사는 디킨즈에 비할 정도는 못되지만 그 나름의 신선함과 가혹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셜록 홈즈』풍의 고상한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범죄와 비교해보자면 젠틀먼의 사악함은 모리아니 교수를 능가하고, 수와 모드의 캐릭터에 부과된 역동성은 빅토리아 시대를 규정짓는 수동적 여성상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2005년 드라마화 되었는데 몇 해 동안 소설에 쏟아 부었던 시간보다 더 산뜻하고 명쾌한 두 시간이었다는 사실은 주지할만한 점이다. (영국 드라마답게 감정 묘사가 섬세하고, 소설보다 반전의 흐름이 더 살아있다. 이 부분에서 후한 점수를 줄 만하다. 반면 남자 주인공의 경우 잘 생긴 얼굴에 비해 연기력이 형편 없다. 끝으로 드라마만으로는 전체적인 시대상을 이해하기에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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