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열다섯권이란 장대한 여정 끝에 시오노 나나미판 ‘로마사’는 끝을 맺었다. 한 권, 한 권을 십여 년 동안 모아나가면서 나이를 먹고 심드렁해진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어서 방대한 작업이 마무리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반응은 좀 시원찮다. 하긴 열다섯권이란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지만 겹치고, 겹치고, 또 겹치는 이야기를 빼면 그리 놀랄 분량도 아닌데다, 그 결사적인 정열에 의당 보일 법한 존경의 염 대신에 조소가 먼저 걸리는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이 아닐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몇 년 전까지 난 ‘동인’이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를 몰랐기에 ‘로마인 이야기는 시오노 할머니의 카이사르 동인지’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서술하면서도 결코 빼먹지 않는 카이사르 타령에 이제는 기가 질린 참이다. 그녀의 맹목적인 태도는 그녀가 제대로 훈련받은 학자가 아닌 아마추어 작가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일일 테지만 이제는 그런 것을 일일이 따지는 것조차 귀찮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로마사에 대한 전반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킨 계기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녀 덕분에 과거보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에 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다. 로마사에 관련된 좋은 저술들이 번역되기 시작한 것도 그녀 덕분에 독자의 저변이 넓어진 까닭이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 외부 효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사람들에게 주입한 아찔한 편견들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진저리가 난다.

그 아찔한 편견을 진실이라고 믿고 자라난 세대와  함께 늦깍이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그네들이 이해하고 생각하는 로마는 어딘지 위험하고 공상적으로 보인다. 어째서 그녀가 묘사한 로마보다 콜린 맥컬로우가 묘사한 로마인의 삶이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서는지, 영국이 자랑하는 수많은 로마사 전문가들이 줄기차게 쏟아내는 저술들이 그려내는 정치 현실과 시오노가 상상하는 공상적 현실은 왜 그렇게 다른지를 생각해 보는 일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열다섯 권, 십여 년이라는 시간을 돌이켜 보면 이런 일방적인 비난은 이쯤에서 멈추어야 할 것 같다. 때로는 그녀가 보여주었던 독특한 시선과 구성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순간들도 적지 않았고, 기존의 간략하고 딱딱한 서술 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았던 이런 저런 빈틈들이 그녀를 통해 채워진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누가 로마사에 관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좀 마땅찮은 책이다. 다른 책들에 비해 쉽고, 로마사 전체를 한번쯤 조망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주입받은 어느 아마추어의 망상이 틀림없이 제대로 된 책들에 대한 이해를 방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로마를 주제로 삼은 괜찮은 저작들 대부분이 통사이기 보다는 특정 시대사나 인물을 집중적으로 조망하기 때문이다. 결국 최선의 방법은 딱 하나다. ‘읽어라, 하지만 읽되 대하역사소설처럼 읽어라. 이것은 결코 사실이 아닌 논픽션에 가까운 픽션일 뿐이다.”

2 thoughts on “로마인 이야기

    1. 내일 예비군 다녀와서, 혹은 주말에 시간을 내볼께. 하지만 주간사 한쪽이 마음에 걸리는 군. 아무리 높게 쳐주어도 그 쪽 편집자들은 신뢰가 안가거든. 눈물 젖은 손수건이 노스탤지어라고 느끼는 사람들 입맛을 맞추는 것은 보통 지난한 작업이 아니라고.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