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 살인

나쁜 소설임에도 마음을 흡족하게 채워주는 소설들이 있다. 어떤 혹평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작가를 옹호해주고 싶은 무모한 용기가 무럭무럭 피어난다는 부연이 바로 이런 소설들을 꾸미는 또 다른 수식어이다. 하기야 세평 같은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은 지 오래니까 이 기회에 덮어놓고 호평 일색으로 지면을 채워도 무방할 것도 같다. 모난 양심이 힘만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단테의 신곡 살인』은 사실 제목만큼이나 유치한 플롯과 엉성한 사건 전개를 자랑한다. 추리 소설이라 부르는 것이 민망스러울 정도로 형편없는 트릭을 사용하는 데다가 첫 열 다섯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여보란 듯 범인을 쏙닥거린다. 정통적인 소거법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범인의 윤곽이 손쉽게 잡히는 이 소설의 결점을 찾아내는 지루한 작업은 이쯤에서 멈추어야겠다.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괜찮았던 부분이 분명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소설에는 성급한 사건 전개 속에서 느껴지는 다소 기이하다 싶은 권태로운 분위기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몰입에 따른 긴장감 대신에 나사가 반쯤 풀린 듯싶은 나태가 읽는 이의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기실 18세기 베니스를 설명하는 데 있어 ‘쾌활함에 가려진 권태로움’이란 문구보다 더 적절한 것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햇살에 찬란하게 반짝이는 베니스를 유쾌한 어조로 떠올리겠지만 찬란한 햇살이 미치지 못하는 어두운 골목과 밀실에 자리 잡은 이야기는 어떤 빛도 허락받지 못한 지루하기만한 일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단테의 신곡 살인』에서 작가는 쇠락한 마지막 도시국가가 내뱉는 한숨을 추리 소설이란 형식을 빌려 그려내고 있다. 그렇기에 인물들의 행동은 명쾌하지 않으며 혼란스럽고 덧없다. 코메디아 델아르테의 배우처럼 그들은 그저 각자가 많은 stock character를 반복해서 연기할 뿐이다. 각본은 없지만 각본이 없어도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전형성 속에 모두가 갇혀 있다. 출구가 없는 미로 속에서 그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전형화 된 캐릭터 속에서 위대한 역사는 저물어도 사랑은 살아남는다는 다소 진부한 주제가 되려 힘을 얻게 된다. 결국 음모가 깊어질수록, 화려한 축제를 배경으로 소설의 규모가 커질수록 사랑을 제외한 그 어떤 의도도 공허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관능적이지 않음에도 호소력이 넘치는 소설 속의 사랑 앞에서 애당초 다른 모든 문제들은 지엽적인 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혼란스러움도 주인공의 시선 너머로 보이는 베니스의 진짜 풍경 속에서는 이내 녹아 없어진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비슷한 취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그려내고 싶었던 장면 장면을 실제 풍광과 연결시키는 일은 전혀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마치 갤러리가 된 것처럼 인물들의 움직임을 감상하면서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흔하지 않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추리 소설로는 별로라 하더라도 그가 궁극적으로 그려내고자 했던 감정과 이야기, 그가 바라보는 베니스가 어떤 것인지는 충분히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목격한 11월의 베니스도 소설 속의 묘사처럼 지루함을 숨기기 위한 연기를 멈출 수 없는 가련한 도시였다. 도시는 쇠락함을 감추기 위해서 짐짓 유쾌한 표정으로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화려한 궁전과 저택들 사이에는 바닷물에 잠긴 도시와 스산한 미로가 존재한다. 햇살이 저물 무렵이면 도시는 슬픈 냄새를 풍긴다. 아드리아 해의 수로 표지 말뚝에 걸린 망자를 기리는 작은 꽃다발과 갈매기를 바라보면 이 도시에서는 어떤 음악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람이 물결을 스쳐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소리만으로도 베니스만의 느낌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21세기의 베니스와 18세기의 베니스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간격에도 불구하고 도시가 숨을 멈추었다는 사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M_P.S.|less..| 사실 소설을 읽는 동안 내가 맴돈 참고자료는 시에나 밀러와 히스 레저, 스칼렛 요한슨이 공연한 2005년 판 <카사노바>와 타츠노코 프로덕션에 만든 <신데렐라의 이야기>라는 만화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였다. 이상적인 참고 자료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니스를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소설과 이야기. 내가 읽은 어떤 역사서보다 소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 무엇보다 산타 루치아까지 이어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을 공유했던 그녀 덕분에 소설 속에 등장하는 ‘검은 미망인’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일이 너무나 쉬웠던 것 같다. 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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